서태지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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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 가장 큰 이슈
by 가을이
조회 3143 (2015.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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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 5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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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명 K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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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 가장 큰 이슈!

지금, 음악으로 돌아왔다
컴백 서태지

아름다운 기억으로 우리 곁을 떠나갔던 서태지가 돌아왔다. 
숱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뛰어난 음악가인 서태지가 음반을 발표했다는 것은 분명
팬들에게는 반가운 소식. 하지만 어디에서도 돌아온 서태지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심지어 앨범 재킷이나 포스터에도 서태지의 모습은 없다. 이상한 컴백.
과연 어떤 음악으로 돌아온 걸까?

앨범 SEO TAI JI
선주문 1백만 장. 통신을 통한 주문 판매 30만장. 
삼성뮤직과 20억원의 계약으로 숱한 화제를 뿌렸던 태지의 컴백음반은 벌써 2백만 장 가까이 팔렸다는 소문.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음악. 서태지는 새 음반을 발표할 때마다 새로운 음악을 선보여 왔다.
이번 앨범에는 모두 9곡이 실렸는데, 그 중 ‘마야’ ‘라디오’ ‘로드’의 세 곡은 3분 남짓한 연주곡.
나머지 6곡의 노래는 제목 없이 ‘TAKE 1’ ‘TAKE 2’ 하는 식으로 번호만 붙어 있다.
노래들은 모두 어둡고 음울한 느낌. 연주는 기계를 이용해 찌그러뜨려 사용하고. 요란한 전자음 속에 들리는 찌그러진 목소리는 가사를 알 수 없게 만든다. 마치 태지는 자신의 메시지를 아무에게도 알려주고 싶지 않은 듯.
 타이틀곡은 ‘TAKE 2’. 4집에 들어 있는 ‘필승’에서 보여줬던 얼터너티브의 구성이다.
앨범마다 늘 새로운 장르를 들고 나왔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 음악은 그렇게 새롭지는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기계를 이용한 효과음들을 더 많이 사용하고 기타 소리가 강해졌다는 점.
이것이 곡에 어두운 느낌을 더한다.
  
또 하나의 얘깃거리
뮤직 비디오
앨범 작업과 마찬가지로 뮤직 비디오 제작도 철저히 비밀로 진행.
제작자는 서태지 2, 3집 재킷을 제작한 전상일.
모두 애니메이션으로 돼 있어서 참여 인원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아 제작과정이 철저히 비밀에 싸여 있을 수 있었다.
화려한 색과 현란한 변화가 눈길을 끌지만 전체적으로는 노래 느낌과 같은 음울한 분위기.
더구나 책상 위를 기어오르는 벌레나, 떼를 지어 걸어오는 사람들의 가슴이 갈라지는 장면은  음울을 넘어 섬뜩한 느낌.
내용은 한 사나이가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것. 
그 화면속의 이상한 괴물들이 결국은 그 사나이를 삼켜버린다. 
우리사회의 우울한 미래를 암시하는 듯하다.

음반 포스터
이번 홍보 포스터는 모두 세 가지.
소녀, 비둘기, 재킷 사진으로 되어 있다.
소녀는 약간 슬픈 표정.
두 눈에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행복하지 못한 요즘 사람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
서태지가 이 소녀에게 희망을 줄 거라는 기대감을 표현한 것이 기획 의도.
이 포스터의 주인공은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인 김혜경(신세경). 포스터를 만든 제일기획이 50여 명의 후보자를 놓고 고심 끝에 뽑았다.
연극에 몇 번 서본 적이 있는 아역 배우 출신.
재밌는 사실은 혜경(세경)이가 포스터 사진을 찍을 때는 자기가 서태지 앨범 포스터를 찍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점. 포스터가 나오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비둘기 포스터는 짙은 옥색 바탕에 거꾸로 놓인 병 속에서 비둘기가 힘 있게 움직이는 모습을 그렸다.
서태지가 비둘기를 병 속에 담아 태평양을 통해 음악을 전한다는 생각을 표현.

서태지 팩스 인터뷰
어떤 매체와의 인터뷰도 거절하는 서태지가 자기의 목소리를 종이에 담아 삼성음반에 팩스로 보냈다.
과연 태지는 자기의 컴백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이번 음반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른 앨범도 그랬지만 특히 이번 음반은 나한테 중요하다.
음반을 내기까지 고민도 많았고 나 자신과의 싸움도 잊을 수 없다.
정성을 다해 하나의 음반을 완성했고, 이제 여러분과 음악을 통해 다시 만나고 싶다.

이번 앨범은 거의 혼자서 만들었는데
무슨 특별한 의도라도?
이번 앨범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나만의 음색을 차기 위한 연구의 결과다.
모든 곡의 장르가 록인 만큼 기타와 베이스 사운드가 중요했다.
그래서 많은 시간을 새로운 기타와 베이스 소리를 찾기 위해 보냈고, 모든 악기를 직접 연주 했다. 그 결과 만족스러운 소리를 얻어냈다.
그리고 녹음비가 거의 들지 않았다는 것이 아주 좋은 점.
물론 다른 사람한테 모습을 보이는 것이 좀 꺼려지기도 했고.

다음 음반 계획은?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하지만 좋은 음악이 만들어진다면 음반을 발표할 생각이다.

이번 컴백이 팬과의 약속을 깬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도 많이 고민했다. 
먼저 은퇴 당시 기자회견장에서 우리가 했던 모든 말들은 진심이다.
주노형과 현석이도 같은 생각이었고 우리는 서태지와 아이들로서 은퇴를 선언한 거다. 우리는 지쳐 있었고, 사회 전반에 회의가 깊었다.
그때 나는 꼭 자유로워지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음악을 계속할지는 나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다. 나한테 제일 필요한 건 휴식이었고 만약 내가 계속 음악활동을 할 거라고 발표하면 가요계나 언론은 나를 가만 놔두지 않을 거란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잘 아는 사람들한테 “태지는 음악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달라고 부탁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런데 많은 시간이 흘러도 나를, 나의 음악을 무작정 기다리고 있는 팬들이 안타깝기만 했다.
그래서 음악을 다시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팬들의 사랑에 대한 작은 보답을 음악으로 하려고 한다.
이번 앨범이 꼭 좋은 선물이 됐으면 좋겠다.

어떤 사람들은 돈 때문에 
(아버지의 건축비 마련을 위해) 
컴백을 했다는 말들도 있는데
그건 진짜 말도 안돼는 소리다.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이야기까지 나돌 수 있는가?

미국 생활은 어떤가?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고 있다. 일부 떠도는 이야기처럼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다.
내가 소문난 구두쇠란 사실을 잊었는가? 지금 생활이 바로 내가 꿈꾸던 모습이다.
친구들과 함께 높은 산을 오르기도 하고 여름에는 바다 속으로 들어가 탐험을 하기도 하고. 밤하늘의 별을 자주 보다가 천체망원경으로 우주탐사(?)작업을 펼치기도 하고... 뭐 가끔 고독(!)을 느끼는 밤(?)도 있지만 여러분 덕분에 행복한 삶을 즐기고 있다.
 
이번 음반 발표가
컴백이라고 생각하는가?
굳이 컴백이라 말한다면 그렇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마치 직접 무대로 돌아와 활동도 하고 그러는 느낌을 주는 단어 같아서 팬들에게 좀 미안할 따름이다.

음반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일절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나는 진정한 음악인이 되고 싶고 또 그렇게 평가받고 싶다.
음악인은 좋은 음악을 발표하는 것이 가장 큰 활동 아니겠는가? 그리고 난 항상 자유롭게 살고 싶다. 앞으로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생각으로 음악을 만들 거다.

은퇴 선언이나 컴백 선언,
또 새로운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사람들은 돈 때문에 그러는 거라고 
말들을 많이 하는데...
내 음악적 열정을 돈 때문이라고 매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만약 이번 음악이 많이 팔리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음악이 어려워서’, ‘대중적이지 못해서’ 하는 말들을 할 거다. 많이 팔리면 무조건 ‘상업적’이라고 하는 건 말도 안 된다.
지금까지 음반 작업을 위해 잠시 활동중단을 선언하거나, 앨범마다 새로운 음악 장르를 사용해 논쟁을 일으킨 것 때문에 음반이 더 많이 팔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음악 아닌가. 나를 음악사업가라 불러도 좋다. 하지만 음악을 팔아먹는 장사꾼은 아니다. 장사꾼은 돈을 벌기 위해 음악을 하지만 
나는 음악을 하기 위해 돈을 번다.

결혼했다, 주유소를 하고 있다,
이미 한국에 들어왔다 등 많은 소문이 
사실인가?
한마디로 그건 헛소문이다. 미국에서 나를 만났다는 사람도 꽤 많다던데.
그건 모두 새빨간 거짓말.
길 가다 우연히 한국 사람을 본 적은 있지만 나를 알아보고 다가와 이야기를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귀국할 생각은 없는가?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하지만 서울의 거리와 부모님, 친구들, 체조경기장, 뚝섬 등이 많이 그립다. 지금은 잘 참으며 지내고 있기는 하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이른 시일 안에 꼭 가고 싶다.



서태지 돌아보기
92년 1집 [난 알아요]
벙거지 모자에 7부 바지, 운동화, 그대로 달고 다니는 상표.
처음 들어보는 우리말 랩을 하며 태권도 동작 같은 회오리 춤을 보였다.
어른들은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다고 불평했지만 우린 열광했다.

93년 2집 [하여가]
더 본격적인 힙합패션. 통 넓은 헐렁이 바지에 셔츠. 
‘하여가’에서 나온 난생 처음 들어보는 태평소 소리. 
그리고 걷는 듯, 주저앉는 듯 부드럽게 꺾어지는 힙합댄스.

94년 3집 [발해를 꿈꾸며] [교실이데아]
음악은 메탈에 가까워지고, 가사는 현실에 가까워지고, 
패션은 더욱 과감해져 바지 위에 치마를 입었다.
강력한 사운드에 통일의 꿈과 교육현실에 대한 비판을 담아 노래.

95년 4집 [컴백홈] [필승]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들고 나온 갱스러 랩, ‘컴백홈’.
스노보드 룩이란 낯선 이름으로 스키 바지, 광택 소재의 점퍼, 마스크, 빵모자를 걸치고 나왔다.
‘필승’을 부를 때는 머리를 붉게 물들이고.


한결같은 너희들의 정성이 우리에겐 너무 커다란 힘이 되었지
편지 속에 수많았던 사연들 예쁜 마음 모두 다 느낄 수가 있었어.
우리들이 힘든 일을 겪을 땐 그 곁에는 아무도 있어주질 않았어.
다만 우리가 견딜 수 있던 건 너희들의 크나큰 사랑이었어.
함께 기뻐하고 모두 다 같이 웃고 서로를 걱정했던 우리들만의 추억들
우린 약하지 않아 어린애가 아니야 마음을 서로 합하면 뭐든 해낼 수 있어
난 더 잘 하겠어 우리 모두를 위해 우리 역시 영원토록 너희들을 사랑할 거야
-우리들만의 추억


서태지가 유행시킨 것들
우리 대중음악의 역사는 ‘서태지 이전’과 ‘서태지 이후’로 나눌 수 있다.
마치 서양의 역사가 ‘예수 이전’(B. C)과 ‘예수 이후’(A. D)로 나뉘듯이,
그만큼 서태지가 나온 이후 우리 대중음악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얘기.
그럼 ‘서태지 이후’에 생겨난 것들은 무엇일까.

1. 아이들이 따라하는 춤과 패션
서태지 이전에는 가수들 추는 춤 따로, 아이들 추는 춤 따로 였다.
대다수의 아이들은 가수들의 춤을 그저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옷도 가수들은 ‘무대의상’을, 아이들은 ‘평상복’을 입었다.
하지만 서태지가 나오면서 아이들은 가수들의 패션과 춤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데뷔 초기의 상표가 그대로 붙어있는 힙합 패션과 회오리 춤부터 4집 때의 스노보드 룩과 힙합댄스까지.

2. 우리말 랩
지금은 누구나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우리말 랩. 하지만 
태지가 등장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랩은 음악이 아닌 것으로 생각했다. 
처음으로 우리말 랩을 시도한 사람은 ‘디제이 철이’. 지금은 유승준이 소속되어 있는 기획사의
사장인 신철이 ‘나미와 붐붐’이란 팀에서 활동을 하면서 처음으로 우리말로 된 랩을 선보였다.
하지만 우리말 랩이 본격적으로 유행한 것은 서태지의 등장 이후.

3. 다음 앨범을 위한 활동 중단
지금은 신인그룹들 대부분이 데뷔 앨범을 내고 몇 개월 활동하다가 다음 앨범을 위해 활동 중 단을 선언한다. 이걸 처음으로 유행시킨 것도 태지보이스.
서태지 이전에 이런 일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몇 달동안 사람들의 눈에서 사라진 다음에도 여전히 인기를 얻을 수 있는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
이건 일종의 도박이었다. 하지만 태지네가 성공하자 이후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그룹들도 활동중단을 반복하고 있다.

서태지를 둘러싼 논쟁들
1. 신세대 논쟁
90년대에 들어오면서 신세대에 대한 논쟁이 시작됐다.
도대체 기성세대들은 이해할 수 없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
사실 ‘신세대’란 말도 이런 논쟁이 시작되면서 생겨난 말이다.
서태지는 항상 이 논쟁의 중심인물이었다.
실제로 논쟁에 참여한 것은 물론 아니지만, 신세대 논쟁을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서태지를 신세대의 대표 인물로 예를 들었다.
먼저 서태지는 대학을 거부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음악이었고, 
그것을 하기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한 것을 당당하게 말했다.
대학에 안가면 절대로 인간답게 살 수 없다는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바로 도전하는 행동이었다.
그런 서태지가 기성세대 누가 보아도 성공을 했으니, 신세대 편을 드는 사람들은 누구나 태지보이스를 예로 들었다.
우리들은 그런 태지를 자랑스러워했고.

2. 악마주의 논쟁
1994년 발표한 3집 음반에서 태지의 관심은 사회로, 현실로 향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통일을 노래한 ‘발해를 꿈꾸며’ 와 부당한 교육 현실을 

거침없이 비판한 ‘교실이데아’
아이들은 열광했고, 어른들은 걱정했다. 이때 나온 것이 ‘악마주의 논쟁’ ‘교실이데아’를 거꾸로 들으면 ‘피가 고파~’하는 말이 흘러나온다는 소문이 돌면서 ‘태지보이스의 음악은 악마의 음악이다’ 는 주장이 나왔다.
이런 논쟁은 우리나라가 처음이 아니다.
외국의 록음악을 거꾸로 들어보면 악마의 소리가 나온다는 주장이 몇 십 년 전에 미국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별로 근거가 없는 얘기.
어느 노래든 거꾸로 돌려 들으면 소름끼치는 이상한 소리가 나오게 마련이다. 또 그게 정확한 발음으로 들리는 게 아니니까 정확하게 ‘피가 고파~’란 말이라고는 아무도 단정할 수 없다.

3. 은퇴 논쟁, 혹은 상업주의 논쟁
태지보이스의 은퇴 소식이 처음 언론에 알려진 다음에, 그것을 둘러싸고 한동안 말들이 많았다.
태지의 은퇴가 ‘돈을 더 벌기 위한 깜짝쇼’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실제로 태지보이스 은퇴 이후 서태지의 모든 음반은 다시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3, 4집이 생각보다 많이 팔리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러 은퇴 선언이란 깜짝쇼를 했다는 주장
또 한때 태지가 있었던 록그룹 시나위는 서태지의 은퇴를 깜짝쇼로 비난하는 ‘은퇴선언’이란 노래를 발표하기도 하고.
그 숱한 말들을 뒤로 한 채 태지는 한국을 떠나.
태지의 모습이 사라지자 논쟁도 시들해지고. 그 뒤로 4년이나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니 사람들의 비난처럼 깜짝쇼가 아니란 걸 보여준 셈이다.

4. 컴백 논쟁, 혹은
약속을 어긴 것이 아니냐는 비난
서태지 컴백은 통신에 불을 당겼다. 온통 서태지 컴백에 대한 찬성과 반대 의견이 통신을 가득 메웠다.
컴백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팬과의 약속을 어겼으니 태지의 컴백은 잘못이라는 것.
더구나 20억 원이라는 엄청난 계약금을 받았으니 돈 때문에 컴백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도 이어졌다.
하지만 대다수의 팬들은 태지의 컴백을 환영했다. 가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
그러니까 음반만 내고 다른 활동을 안 하는 건 별로 문제가 안 된다는 얘기다.
또 음악이 어떤가가 문제지 얼마를 받았는가는 상관이 없다는 의견이 대다수.

서태지와 나
은퇴 후에 더 열성이 된 팬
유수연(25세)
고3때 지켜본 태지보이스의 데뷔 무대. 난 별 감흥 없이 봤는데, 다음날 학교에 가보니 애들은 완전히 난리가 아니더라구.
테이프를 들고 설치는 애들한테 한 곡을 얻어(?)들었지.
‘이 밤이 깊어가지만’이란 노래 한 곡으로 완전히 반해 버렸어. 하지만 그대는 고3.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 흔한 공개 방송 한 번 달려가 보질 못했어.
그저 아쉬운 맘 달래느냐고 친구들 모아 야자 시간에 담 넘어서 분식집에 찾아가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오는 방송을 보는 것이 고작. 그러다 태지네가 은퇴한 다음에야 ‘서기회’에 가입, 
본격적인 팬클럽 활동을 했어.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고... 하여간 지금은 서기회 부회장으로 열심히 활동중이야.
 
지날수록 더 좋은 태지의 음악
강대훈(18세) 내가 좋아한 것은 태지형의 음악. 왜냐구?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는 들으면 들을수록 새롭거든. 소리가 클 때와 작을 때, 깜깜한 방안에서 들을 때와 밝은 밖에서 들을 때 모두 달라. 심지어는 아이스크림을 물고들을 때, 매운 떡볶이를 먹으며 들을 때, 모두 다른 느낌이 나거든.
그래서 처음에 들을 때는 그저 좀 좋던 음악도 자꾸 듣다보면 점점 더 깊숙이 빠지게 되는 거야.
그 중에서도 난 4집 앨범에 있는 ‘슬픈 아픔’이 최고로 좋아. 


“무엇보다 앞선 은퇴 이유는 팬들의 가슴속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고 싶다는 저희의 다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저희 서태지와 아이들 세 명은 데뷔 때부터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팬들의 사랑이 가장 넘치는 순간에
은퇴하여 영원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고 팬들 역시 저희의 결심을 지지해주셨습니다.”
1996년 1월 31일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기자회견 전문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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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4월 창간 특대호 제 1권 1호
WEWE
1997년 4월 창간특대호 WEWE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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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dy 핫 이슈 가요계의 신화 서태지 컴백 내막 꼼꼼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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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3월 8호 통권 744호
TV가이드
팀 해체 그 후 모습 LA현지 사진 최초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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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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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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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회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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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김명호 차장/사진 김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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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꼴이 30일간 준비했다 서태지 대백과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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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및 진행 민선화/사진 임준선,정지윤, 이충신, 서태지와 아이들의 영상집 ‘인연’,서기회, 닉스, 서울문화사 자료실/자료협조 서기회, 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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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 HERO BOOK 서태지 프로젝트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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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고경희/글 임진모,조성진,김보현/사진 김이석, 김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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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TAIJI A SPECIAL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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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독점기획 서태지 충격 컴백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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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명호 본지 편집부장 ,정리: 남순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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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Wide 서태지와 아이들 충격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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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진정구/ 김명호 차장, 사진: 김문식 기자, 사진제공: 제일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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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서태지와 아이들 은 과연 어떻게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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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제일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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