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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의 위상에 대해 궁금하다면 필독 (기타)
by 롤롤
조회 140 (2019.10.02)  
게재일 2017-07-17 
시기 9집 
작성자 nobigbro 
출처 mlbpark 
출처구분  
내용구분 대중문화, 인물탐구 
분량 전체 
link http://mlbpark.donga.com/mp/b.php?p=1&am...jXHl-Yihlq 
CCL 저작자표시(BY) 
아까는 술마시는 도중에 옆에 친구들과 얘기해가며 두서없이 쓴글이라



조금 수정도하고 보충도 하여 쓰겠습니다.







우선 서태지가 데뷔했던 1992년 이후



그의 인기와 위상의 변화에는 여태까지 총 네 가지 시기가 있었습니다.





1. 1~2집


첫번째 시기는 지금의 서태지의 위상이 대부분 확보된

서태지와 아이들 초기 시절입니다.

1992년 난알아요 데뷔는 그야말로 한국 가요계의 다시 없을 대충격이자 대사건이었습니다.
공중파 11주 연속 1위, 데뷔와 동시에 가요대상 수상, 석달만에 100만장 판매 같은 곁가지들은 뒤로 하더라도
캐주얼하고 감각적인 옷을 입으며 격렬하게 춤추고 

메탈브금에 노래같지도 않은 말을 주절거리며 노래하는 모습 자체만으로 한국 사회의 대충격이었습니다.

이후 1993년에 나온 2집 하여가가 불러일으킨 열풍은

기어이 한국 대중문화 판도를 기성세대와 신세대로 완전히 갈랐습니다

난알아요 그전까지는 랩이 몇몇곡밖에 없었고

랩을 테마로 한 앨범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전까진 주현미 태진아 현철 노사연이 대상타던 시절이었고

30대 이상은 트로트, 그 이하는 발라드가 절대대세였어요.

그게 서태지와아이들 1~2집으로 송두리째 뒤집힌겁니다.

랩댄스가 가요시장의 최전선에 부상하였고

그 흐름은 아직까지도 바뀌지 않았어요

예컨대 60년대생들과 70년대생들의 음악 취향차이와

70년대생들과 90년대생들의 음악취향차이를 보세요

전자가 훨씬 격차가 큽니다.

그리고 지상파순위프로 트로트 마지막 1위가 93년, 이무송의 사는게뭔지인데 

이후 트로트가 다시 1위를 하기까지 무려 11년이 걸리고(장윤정의 어머나)

그 이후로는 강진 땡벌 딱 한번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92~93년, 이때부터 기성세대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서태지 이후로 가요를 안들었어.'

이후 지금까지도 케이팝의 대부분은 멜로디있는 보컬과 

랩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서태지 1~2집의 문법에서

크게 벗어난게 없는거지요.



2. 3~4집

두번째 시기는 94~97년입니다. 앨범으로 치면 3~4집입니다. 
서태지가 1~2집으로 대중문화신을 밑바닥부터 갈아엎은 영향력은

그전에도 그후에도 없던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당시 세계나 정치상황은 반대로

그 굳건하던 소련과 동구권이 허망하게 무너지고

혁명은 요원한 일이 되었지요.

이러한 영향을 받아 한국에서도 운동권이 퇴조했고요

그 퇴조한 운동권이 서태지의 대중문화혁명을 보고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졌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93년에 나와 뜨거운 화제를 일으킨 도서인 [신세대,네멋대로해라]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서태지에게 사회적 메시지에 대한 압박을 상당히 줬습니다.

2집에 이르러서는 젊은 지식인층에서 대놓고

서태지더러 사회적 메시지를 말하기를 요구하죠.


서태지가 이에 화답했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나

그의 3집은 그에 대한 반향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일전에 티비에 나오는 대중가수는 단 한번도 타이틀곡으로 한 적없던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표현합니다. 

김일성이 죽은지 한달도 안되어 평화통일을 노래하고(발해를꿈꾸며) 

획일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대한민국 교육에 대해(교실이데아) 

정말 신랄하게 꼬집고 노래했거든요

이후 서태지는 진보진영에서는 새로운 시대의 메시아격으로 포장되고

보수진영에서는 되도안한 일개 딴따라가 감히 시대에 도전한 괘씸한 일이 됐어요

사탄파동은 그 보수반동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리하여 95년 벽두에 서태지는 월간조선 광복이후 현대사 100인에 선정되고 

말지에서는 광복이후 현대사 20인에 선정됩니다.

이러한 서태지의 사회적 영향력이 현역에서 가장 위력적으로 발휘된 때는

바로 4집 컴백홈과 시대유감때인데

컴백홈때는 그 어마어마한 대중적인기를 떠나서

가출청소년들이 집으로 돌아올 정도로 

당시 청소년들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햇습니다.

당시 kbs 추적60분을 보면 청소년들이 인터뷰에서 말하기를

서태지가 우리시대를 창조한다

난 그를 감히 신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합니다

또한 시대유감이 공윤 심의로 가사가 난도질 당하자

서태지가 가사 전체를 들어냈는데 이때문에 서태지팬들이 전국적으로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당시 엄청난 민주당 분당이라는 정치적 모험으로

새정치국민회의라는 제1야당을 재창당한 당시 김대중총재가

전두환 노태우 비자금사태와 518진상규명으로

그어느때보다도 바쁜시기에

직접 나서서 '서태지와아이들진상규명위원회'를 지시할 정도로

서태지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한 것이었습니다.

96년 성대 대입입시 논술로 서태지와아이들 영향력에 대해 나올정도였어요

물론 94~96년 당대 음반판매량과 가요최고의 히트는 압도적으로 김건모의 것이었습니다.(핑계, 잘못된만남, 스피드)

하지만 서태지는 이를 넘어서는 사회적 음악적 영향력으로 그냥 다른 차원에 있었어요


서태지는 바로 이때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고 은퇴를 하게 되는데

이순간, 마치 92년 김대중은퇴때 보수언론이 은퇴를 미화하여

다시는 복귀못하게 하려고 했듯이

온 언론이 서태지를 시대의 혁명아로 주목하였고

그 대표적인 사건이 97년 삼성경제연구소 조사 결과입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당시 광복 이후 대한민국 최고 히트상품 1위로 서태지를 꼽았습니다.

그냥 96~97년의 서태지는 역사상 원톱의 위상이었습니다.



3. 5~8집

그러나 서태지는 기본적으로 음악인이었고

은퇴이후 2년반만에 다시 솔로앨범을 발매합니다.

그이후 정계복귀이후의 DJ가 그랬듯이 대거 안티가 양산됩니다.

은퇴번복으로 인한 안티였지요

디제이에게 대통령병환자라는 프레임을 붙였다면

서태지에게는 해외서살다가돈떨어지니들어왔단 프레임을 붙였습니다.

게다가 서태지 본인도 이시기에 대중음악의 흐름에 맞춰가기보단

본인이 정말 하고 싶은 록이나 메탈에 매진했지요.

따라서 이 시기의 서태지의 인기는 철저히 매니아 위주로 돌아갑니다.

근데 문제는 그 매니아가 너무 거대한 겁니다.

98년에 나온 5집 때는 방송활동 한번안하고 음반을 110만장을 팔았고요.

2000년에 서태지가 6집으로 귀국했을때는

2000년 전체를 통틀어 손에 꼽히는 사회현상이었습니다.

팬 5000명이 공항에 운집했고 

모든 분야의 매스컴들이 서태지로 쏠렸습니다.

아이들시절을 넘어서는 이른바 서태지신드롬이 불었고

일거수일투족이 화제였습니다.

하지만 서태지 본인은 여태까지 본인을 음악가로 보기 이전에

각자 입맛대로 이미지를 입혀버린 언론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 시각을 가졌고 기피했습니다.

그러자 대부분의 언론은 황색언론짓을 앞다투어 합니다.

서태지를 이상한 괴물로 만들고 돈에 찌든 흘러간 혁명가로 폄하했습니다.

근데 그러면 그럴수록 서태지매니아들의 충성도는 높아져만갔습니다.

그리하여 6~8집 내내 연말결산에서 최상위권 성적과

어마어마한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지만

정작 대중으로부터는 괴리된, 

이른바 한국 대중문화계에서 가장 큰 서태지섬이 이어진 시기였습니다. 





4. 스캔들 이후

그러나 그 철옹성같은 서태지섬과 매니아들의 극성은 

정말 엉뚱하게도 스캔들로 와해가 되었습니다.

앞서 말한 2~3번당시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서태지랑 싸웠던 팬들이

2013년 결혼 사태로 상당수가 팬에서 안티로 돌변했습니다.

서태지는 9집 이후 이전보다 더 다양한 매체에 등장했고 

해피투게더에선 음악 외적인, 스캔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은 이 연장선상인데

그래도 서태지는 서태지였습니다.

이후 2014년 9집활동과 2015년 펜타포트 라이브로

라이브하는 리빙레전드의 서태지 이미지가 상당히 구축되었고

또 90년대가 거듭 주목되고 케이팝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서태지는 해외에서 케이팝의 아버지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어쨌든 서태지의 위상은 전혀 내려올 일이 없어졌고 

현재는 그냥 조용필과 함께 리빙레전드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9월에 있을 데뷔 25주년 콘서트 무지 기대됩니다!!
롤롤 I 2019.10.02 (16:59:32) I 추천 0
좋은 글인거 같아 허락도 없이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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