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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신화는 계속된다 SEO TAI JI
by 알쥐
조회 86 (20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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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 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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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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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신화는 계속된다
SEO TAI JI
제1장 LOVE TAIJI
제2장 HISTORY OF TAIJI BOYS
제3장 WRITTEN MEMO
제4장 TAIJI'S LETTER
제5장 MUSICIAN TAIJI
제6장 FASHION LEADER
제7장 TAIJI PHOTO ESSAY
제8장 COMEBACK REPORT
제9장 MUSIC VIDEO

Seo Tai Ji 제1장 LOVE TAIJI

TO FAN
여러분들의 따뜻했던 마음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뜨겁게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여러분 마음을 한자리에서 영원하게 숨쉬며 살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기자회견 중에서)

Seo Tai Ji 제2장 HISTORY OF TAIJI BOYS

시간은 결코 그대를 기다리지 않는다.
세월이 흐르면서 잊혀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 서태지의 경우는 글쎄... 아무래도 후자가 아닐까? 활동 당시에도 신비주의에 쌓여 있긴 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후 태지를 쫓는 시선은 점점 더 많아졌다. 해체나 은퇴 후 잊혀지는 다른 가수와는 그 이야기의 시작부터가 다르다.

우리가 태지를 이토록 그리워하는 이유는?
음악? 곱상한 귀공자 같은 그의 외모? 아님 단지 호기심?
태지는 완벽주의자다. 음악에 있어서나 사생활에 있어서나 그는 늘 완벽하려고 노력했다. 아니 완벽하다. 우린 어쩌 그를 닮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에 열정적인 태지의 모습을, 늘 변하지 않는 태지의 마음을.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남은 두 사람은 돌아와 열심히 활동하며 팬들과 함께하고 있는데, 유독 태지만은 닿을 길이 없었다. 태지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컴백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한 번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 태지라고. 컴백의 유무를 두고 많은 언론이 주목했지만 은퇴 후 2년이 지나도록 태지는 침묵했다. 그후, 2년 5개월 만에 그가 돌아왔다. 창작의 고통에서 벗어나 그저 평범한 청년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던 태지가 컴백했다. 하지만 목소리도 얼굴도 드러내지 않는 앨범을 통한 간접적인 컴백이었을 뿐 태지의 모습은 역시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멈춰 있었다.
태지는 팬들을 사랑했다. 그가 발표하는 음반 맨 마지막 'Special Thank To'엔 언제나 팬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했다. 앨범 한 자리는 언제나 팬들에게 바치는 노래를 위해 비워둔다. 가식적이지 않은 진실된 모습으로 팬들과 마주한다. 우리의 사랑이 닿은 걸까? 얼굴 없는 컴백이었던 1998년 7월 7일 이후 정확히 2년 2개월이 지난 지금 우린 보고 느낄 수 있는 태지를 만난다. 우리 앞에 태지가 서 있는 것이다. 그는 결국엔 팬들의 사랑을 받아들였다.
보이지 않은 5년여의 기간. 어떤 모습일까? 얼마나 달라졌을까? 오랜 휴식 끝에 찾아온 태지의 얼굴은 무척이나 밝다. 그가 외 숨어 있었는지, 그동안 뭐하며 지냈는지는 궁금하지 않다. 같은 공기를 마시며 태지와 함께할 수 있는 바로 이 순간이면 그만이다.
그가 준비한 선물. 9월 7일. 집중을 요구하는 음악이 있는가 하면 배경이 되어주는 음악이 있다. 따지지 말고, 정하지 말고. 그저 마음으로 느껴보자.

'서태지와 아이들' 활동 일지
1967. 2. 10 이상우(이주노) 태어나다.
1970. 12. 2 양현석 태어나다.
1972. 2. 21 서울 가희동에서 정현철(서태지) 태어나다.
1984 이주노 '골목길'을 부른 가수 이재민의 백댄서로 들어가다.
1989 서태지 서울 북서울 공업고등학교 1학년 자퇴.
1990 신중현이 운영하던 '우드스탁'에서 전성적인 기타리스 이중신의 소개로 연주한 것이 기회가 되어 '시나위'에 들어가 '시나위' 4집 앨범에서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다.
주노와 현석, '아, 바람이여'를 부른 가수 박남정의 백댄서로 들어가다.
1991 '시나위' 해체 후 컴퓨터 음악에 관심을 보이며 랩과 힙합 장르에 빠지다. 서태지, 이주노, 양현석이 모여 '서태지와 아이들' 결성.
1992. 3. 23 '서태지와 아이들' 1집 '난 알아요' 발매.
1992. 3. 29 KBS '젊은의 행진'에 '서태지와 아이들' 첫 방송 출연.
1992. 3. 29 1집 라이브 콘서트.
1992. 10 일본 첫 방문.
1992. 11. 20 테크노&라이브 믹스 앨범 1집 앨범 발매.
1992. 12. 9 '92년 TV 저널 '올해의 가수상' 수상.
1993. 4. 14 일본 PAX MUSIC 참가.
1993. 6. 19 MBC '특종 TV연예'로 2집 컴백 방송 시작.
1993. 6. 26 '서태지와 아이들' 2집 '하여가' 발매.
1993. 12. 3 SBS 서울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작곡상' '기획상' 수상.
1993. 12. 23~25 '마지막 축제' 2집 라이브 콘서트.
1993. 12. 28~29 '마지막 축제' 2집 라이브 콘서트(부산 공연).
1994. 1. 15 '마지막 축제' 2집 라이브 앨범 발매.
1994. 7. 29~30 국제 영상 음악제 참가.
1994. 8. 13 3집 '발해를 꿈꾸며' 발매.
1994. 8. 13~15 '새로운 도전' 3집 부활 콘서트.
1994. 11. 21 SONY 안티노스 레코드사에 의해 일본판 앨범 판매.
1995. 1. 11~16 '또 다른 하늘이 열리고' 3집 콘서트.
1995. 2. 21 일본판 2집 앨범 판매.
1995. 3. 27 3집 라이브 앨범 판매.
1995. 10. 6 '서태지와 아이들' 4집 '컴백 홈' 앨범 발매.
1995. 10. 6 MBC '인기 가요 베스트 50' 방송으로 4집 컴백쇼.
1996. 1. 19 MBC '인기 가요'에서 공연 (둑도 나루터)
1996. 1. 31 성균관대학교 유림회관에서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공식 기자 회견.
1996. 2. 27 굿바이 베스트 앨범 발매.
1996. 4. 14 '서태지와 아이들' 기념 사업회 발기인 대회 (둑도 나루터).
1996. 6. 7 공연윤리위원회 사전 심의제 폐지.
1996. 7. 10 '시대 유감' 미니 앨범 발매.
1996. 9. 4 MTV Music Video Asian Viewer's Choice Awards에서 '컴백 홈' 뮤직 비디오로 본상 수상.
1996. 9. 20 서기회가 MTV Music Video Awards 대리 수상.
1998 은퇴 2년 만에 'TAKE' 연주곡으로 컴백 및 솔로 앨범 판매.
1999 미국에서 여전히 음악 작업에 매진하다.
2000. 8. 29 LA발 아시아나항공 편으로 오후 6시 45분에 김포공항 제 1청사에 귀국하다.
2000. 8. 30 새벽 2시 신라호텔에서 전화를 이용 '서기뢰' 사서함을 통해 팬들에게 인사말 남기다.
2000. 9. 1~5 서태지 두 번째 솔로 앨범 타이틀 곡인 '울트라맨이야' 뮤직 비디오 촬영하다.
2000. 9. 7 서태지의 두 번째 솔로 앨범 '울트라맨이야' 앨범 발매.
2000. 9. 9 PM 8시 올림픽 공원 펜싱 경기장에서 컴백 콘서트 및 기다리던 팬들과 만남을 갖다.
2000. 9. 12 MBC TV를 통해 서태지의 첫 단독 콘서트 녹화 방송.
2000. 9월 13~? 서태지의 문화 혁명 시작.

960131 AM 10:30 은퇴 성명서
이뵬을 고하며...
(중략) 저희는 오늘, 1996년 1월 31일을 기하여 지난 4년간의 가요계 활동을 마감하고 대한민국의 평범한 청년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지난 1992년 4월 1집 '난 알아요'를 발표한 이후 4집 '컴백 홈' 까지의 가슴 벅찼던 감사의 시간들을 이제는 접고, 모든 것을 훗날의 평가에 맡긴 채 '서태지와 아이들'은 이제 여러분의 곁을 떠나려 합니다.
사랑하는 팬 여러분께...
작별을 준비하고 오늘을 맞이하기까지 저희의 가슴을 채우고 있는 팬 여러분들꼐 가장 먼저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팬 여러분, 저희들은 여러분을 한없이 사랑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중략) 새로운 음반을 만들어내는 창작의 작업은 제게 살을 에고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의 연속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중략) 우리의 앞으로의 삶 속에서 시련과 고통이 닥칠 때라도 여러분과의 꿈결 같았던 4년간의 사랑이 우리를 지킬 것입니다. (중략)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 뜨겁게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마음 한자리에서 영원히 살고 싶습니다.

Seo Tai Ji 제3장 WRITTEN MEMO

언제나 함께했던 시간들을 접어 두고서 이제 너는 떠나가네
즐거웠던 시간만을 기억해 줄래
해맑은 네 두 눈에 반했던 게 어제 같은데 이제 너는 떠나가네 
우리의 따뜻했던 마음 기억해줘
신비한 채로 가려져 있던 널 알기도 전에 우리가 헤어지는 일은 없을거라 
난 믿었는데 너를 보내기 위함 춤을 추고 있어 짧은 시간만이 남았어
내 친구야 창 밖을 봐 눈이 오잖아 모두 너를 위한 거야 느낄 수 있니
아침 해가 뜨기 전에 널 보내줄게
내겐 언제나 짜릿함으로 다가왔던 너의 따뜻한 미소
우린 언제나 다함께 나누었던 웃음과 눈물 신비롭던 너의 몸짓이
하나하나가 나의 기억 속에 언제나 매일매일 생각나겠지
어쩌나 너의 길이 힘겨워 걷다가 지칠 땐 주저앉아 잠시 울어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생각해
친구야 하루가 다 지나가고 잠들기 전엔 우리들을 기억해줘
다시 만날 땐 너를 꼭 안아주겠어
-2집 '마지막 축제'중에서-

Seo Tai Ji 제4장 TAIJI'S LETTER

2000811 PM 3:00
미국에서 보내온 태지의 편지
안녕하세요 태지입니다.
그동안 건강하게 잘 지내셨죠?
너무나 긴 시간을 여러분들과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 인사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 정말로 생각이 나질 않았어요. 그리고 여러분들꼐 저의 보고 싶었던 마음과 더불어 죄송스러운 마음들을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할게요.
우성 사실부터 말씀 드리자면...
이제 태지는 여러분들의 곁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짧지 않았던 4년 7개월 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음악생활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지난 5집 '테이크 원' 앨범 이후로 2년 동안 새로운 음반 작업에 몰두해 왔으며 다행히고 좋은 음악이 만들어졌다는 저의 생각이 이번 국내활동의 결심을 만들어냈습니다.
막상 여러분들 곁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정하고 나니 요즈음은 하루하루가 너무나 가슴 껄리고 행복합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동안 저로 인해 너무나 힘들어 하셨던 여러분들 생각에 마음이 무겁고 죄송하다는 생각밖엔 안 들어요. 쉽지 않은 결정을 하기까지 너무나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역시 글로서는 제 심정을 표현하기가 너무 부족한 것 같군요.
9월 초 한국에서 직접 만나 좀더 자세하게 말씀 그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한국에서 지난 4년 간 음악생활을 하면서 여러분들과 너무나 행복했고 좋았던 추억들을 수없이 만들어냈지만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들도 많았던 것 같아요. 항상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생각들마저 지친 몸으로 인해 음악적인 한계에 다다른 것인 아닌가? 라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으니까요.
내가 과연 계속해서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고 좌절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그동안 미국에서 지내면서 많은 여유를 되찾게 되었고 다시 음악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되어 제 자신을 되찾는 데 참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던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이제는 그렇게 완성시킨 음악을 여러분께 직접 들려드릴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생기게 되어 마냥 기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번에 한국에 가면 여러분과 직접 만날 수 있는 콘서트 들의 공연을 가급적 많이 만들 생각이에요. 물론 방송계획도 있고요.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긴장되고 떨리네요. ^ ^ 아직 이번 음악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드릴 수 없어 죄송하지만 이번 음악 역시 많이 색다른 음악이라는 것과 최선을 다한 음악이라는 것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현재 모든 진행이 순조로운 편이구요. 이미 음반의 믹싱과 마스터링을 끝낸 상태이며, 지금은 미국에서 한국활동에 대한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에요.
사실 너무나 오랜만에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글이고, 또 처음으로 인터네을 통해 인사드리는 편지라서... 좀더 다정하고 따뜻하게 쓰고 싶었는데... ^^
워낙 말주변이 없어서인지 그게 잘 안 되네요.^^ 사실 어제는 밤새도록 인터넷을 통한 저의 편지를 기다리는 여러분들의 글들을 읽으면서도 저도 눈시울이 뜨거워졌어요.
92년 데뷔 때부터 오늘날까지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여러분들의 사랑과 고마운 마음들.
저 역시 몸은 멀리 있어도 한시도 여러분들을 잊지 않았고 또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진심으로...
그럼 만나는 날까지 안녕히 계시구요, 꼭 좋은 모습으로. 좋은 음악으로 여러분들 앞에 서겠습니다.
9월... 기다릴게요.

2000830 AM 2:00 서태지가 남긴 사서함 메시지
"여러분 만난다는 생각에 잠도 못잤어요"
오늘 공항을 통해서 한국에 돌아왔는데요, 참 감회가 새롭습니다.
갑자기 전화를 하려니까 이렇게 전화로 녹음하고 있는데 떨리기도 하고 말도 잘 안 나올 것 같네요.
오늘 비행이 안에서 내내 여러분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잠고 못 자고 날아왔는데 막상 비행기에서 내려보니까 너무 많은 보도진들 때문에 정작 여러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었는데 꼭 첫 인사는 여러분들 얼굴 보면서 하려고 준비도 하고 그랬었는데 상황이 그렇지가 못해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보도진들 너머 여러분들의 함성 소리를 들을 수 있었구요, 그 함성 소리 때문에 가슴이 뜨거워졌어요.
그리고 지금 숙소로 돌아와서 뉴스도 보고 그랬는데 비로소 TV를 통해서 여러분들...
저를 기다리시건 여러분들의 예쁜 모습들을 볼 수가 있었구요. 정말 그렇게 한결같이 그런 모습으로 남아 주시고 저한테 그런 모습 보여주셔서 정말 마음이 뿌듯했고, 그리고 고맙습니다.
오늘 첫 만남은 너무 아쉬웠지만 9월 9일 다시 제 음악을 가지고 여러분들 앞에 정식으로 또 인사드릴 거고요.
오늘...
저도 오늘만은 여러분들과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땅에서 편히 잠들게요.
그러면 9월 9일 그날까지 안녕히 계세요.

고등학교 1학년 자퇴할 때 태지가 쓴 글
세상을 알기엔 아직 어린 나이.
세상에 의지하기엔 이미 커버린 나는 이 혼돈 속의 정리를 원한다.
두 가지 세계에서 외면당한 설움 나의 같은 공허 속의 이름 신세대.
우리를 바라보는 포장된 시선들은 배부른 소리하지 말라고 한다.
그때가 좋았다고 한다.
그건 나약한 사고이다. 어느 시간 속에 존재하건 자신의 행복은 자신의 책임이다.
시대의, 시간의 책임이 아니다.
나와 같은 신세대여 아무런 대책 없는 미래에 대한 넋두리 이젠 닥쳐주었으면 한다.
냉정한 내 발언에 숨이 막혀어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나약한 영혼이여!
도피의 끝은 진정 죽음이 아니다. 영원히 깨어 있다.
날개를 잃어버린 채 추락하는 영혼이 될 것이다.
나는 두 가지 길 중 사람들의 발자취가 없는 가시밭길을 택하련다.
나의 선택에 따르는 고통은 견딜 수 있다.
가시를 밟으며 피를 흘린 듯 새로운 곳에 내가 먼저 갈 수 있다면.

Seo Tai Ji 제5장 MUSICIAN TAIJI

서태지의 음악 혁명
발표하는 음반마다 매번 충격을 안겨주었다. 거북하거나 어색해서가 아닌 한 발짝 앞서간 진보된 음악을 선보였기 때문. 처음 그들이 데뷔했을 땐 한 가지 장르가 아닌 두 가지 이상 장르의 음악을 믹스해 좋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은 곧 그들의 스타일에 익숙해졌거, 그들이 발표하는 앨범은 매범 품귀 현상을 빚기도 했다. 그만큼 '서태지와 아이들' 음악은 새롭고 진보적이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형식의 틀을 깨는 작업, 그들은 대중을 쫓는 대신 자신들의 음악세계로 대중을 끌어들였다.

1집 앨범 '난 알아요'
1992년 4월 발매된 이 앨범은 모두 1백50만 장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타이틀 곡 '난 알아요'는 받침 많은 우리나라 말이 랩에 적당치 않다는 기존 고정 관념을 완전히 깨고 당시 발라드 위주의 우리나라 가요계 흐름을 10대 위주의 댄스 음악으로 바꾸어 놓은 선구자적인 곡. 이로 인해 완성도 낮은 음악이라고 그들 음악을 혹평했던 음악 평론가들은 대중의 빗나간 화살을 받아들여야 했다. 언제나 원칙적인 것이 앞서진 않는다.
또한 김종서의 코러스가 돋보였던 '환상 속의 그대' 와 새롭게 리믹스된 '이 밤이 깊어가지만' 등을 연속 히트시켜 그들은 데뷔 첫해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이 앨범으로 작사 · 작곡 · 프로듀서 역량에 제작자로서의 상업적 재능까지 겸비한 90년대 최고의 뮤지션으로 떠오른 서태지는 10대들을 대변하는 메시지, 환벽한 이미지 관리 등으로 청소년들의 탄탄한 지지 기반을 마련하며 높은 지지를 얻었다.

2집 앨범 '하여가'
1993년 2월. 그들의 두 번째 앨범에 대한 기대는 대단했다. 역시 그들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지만 아직도 그들의 음악에 반기를 드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자유와 도전' 이라는 음악 모터를 기본으로 한 2집은 그들의 음악 세계를 잘 드러내며 1백80만 장이라는 경이적인 판매를 기록,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로 떠올랐다.
타이틀 곡 '하여가'는 힙합과 헤비 메탈의 국악적 요소까지 가미한 획기적인 사운드 곡으로 서태지만의 독특한 실험정신이 강하게 배어났다.
그의 음악에 대한 또다른 실험과 도전 정신이 엿보이는 곡 '수시아'는 리듬이 강조된 레이브 음악의 곡. 이외에 '너에게'와 팬들에게 바치는 노래 '우리들만의 추억' 등 대중성 있는 곡도 눈에 띈다. 언제나 그렇듯이 서태지는 음악성과 대중성을 절묘하게 믹스한 음악적 천재다.

3집 '발해를 꿈꾸며'
그 어떤 때보다 음앋성이 돋보인 앨범.
'서태지와 아이들' 3집은 1994년 8월에 발매되어 많은 화제를 낳았던 앨범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앨범 중 가장 음악성이 높았으나 팬매량은 가장 적어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제3집의 가장 큰 특징은 1, 2집과 달리 랩보다는 노래가 강조되었고, 그 노래 속에 담신 가사가 지금까지 대중가요에서 볼 수 없는 사회 비판적 의식을 담고 있었다. 또한 록 · 팝 · 메탈 등 다양한 음악이 한 음반에 모두 수록되어 있다는 것도 특징 중의 하나.
타이틀 곡인 '발해를 꿈꾸며'는 어쿠스틱한 기타 연주가 돋보이는 얼터너티브 록으로 통일을 향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으며 한때 악마주의 파문을 몰고 온 '교실 이데아'의 강력한 메탈 비트, 무의미한 말을 내뱉는 가사로 이루어진 '내 맘이야', 서정적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아이들의 눈으로' 등 정의 내릴 수 없는 다양성으로 가득한 앨범이다. 또한 음반 발매 전 1백만 장 예약의 기록을 낳기도 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앨범.

4집 앨범 '컴백 홈'
실험 정신 그리고 사회 문제에 대한 그들의 관심도.
지속덕으로 이어져 왔던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 심의제를 없애는 하나의 계기를 마련한 이 앨범은 3집에 이어 더욱 더 강한 사회 비판 의식을 담아 '청소년들의 대통령'이란 별칭을 서태지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4집이 발매되면서 시작된 '컴백 홈'의 표절시비 문제, 공연윤리위원회와의 마찰은 점점 더 가시화됐지만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에겐 스치는 하나의 헤피소드였지 큰 문제가 되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선 보기 드문 갱스터 랩을 시도, 역시 태지의 실험정신이 전해져 왔다. 물질 만능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 '1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김종서와 함께한 'Free Style' 등이 수록된 4집은 얼터너티브 록의 정착과 청소년에게 힙합 문화를 정착시켰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모든 앨범 컷 머리에 수록된 'Yo Taiji'의 경우 기타와 베이스가 경쾌하게 어울리는 트로트의 리듬이 가미되어 있으며 펑크 곡 '필승', 어설픈 연주와 노래가 60년대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는 '태지 보이스' 그리고 색소폰 연주자 이정식의 연주곡 'Good Bye' 등이 수록 되어 있다. 발매된지 단 하루만에 30만장이 팔리고 2주일 만에 1백만 장의 판매 기록을 세운 4집은 가요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앨범으로 기록되고 있다.

시대유감
4집 수록 곡 중 '시대유감'은 공륜의 제재로 가사가 삭제된 채로 발매됐다. 이것이 공륜의 사전 심의제를 폐지하게 만드는 무언의 항거였고, 공륜 심의제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계이였다. '시대유감' 앨범은 그래서 더 소중하다.

서태지 솔로 1집 앨범 'TAKE ONE'
1998년 7월 7일. 소문만 무성했던 서태지의 컴백 앨범이자 솔로 데뷔 앨범. 미리 예약을 받는 등 은퇴 후 그가 처음 발매하는 앨범을 소장하고자 하는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았다.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후 꼭 2년 5개월 만에 만나는 그의 음악적인 향취.
예약 판매만 1백만 장을 넘어거는 새로운 기록을 낳았고, 태지다운 파격적인 음악과 뮤직 비디오로 또 한번 화제를 모았다. 단 앨범의 재킷 어디에도 태지의 얼굴을 발견할 수 없었으며, 뮤직 비디오 어디에도 그를 만날 수 없어 많은 궁금증과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그저 그가 그동안 작업한 음악으로만 그를 느낄 뿐.

1집 라이브 앨범
서태지에게는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앨범이다. 바쁜 스케줄로 콘서트를 준비하는 기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후속 작업을 통해 몇 곡은 추가 수록됐다. 그래도 여전히 아름다운 앨범이지만 서태지의 다른 앨범에 비하면 약간의 미진한 부분도 보인다.
하지만 이 앨범은 무엇보다 서태지가 천 번째로 갖는 라이브 콘서트 앨범이라는 데 그 가치가 있다. 처음이라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치긴 했지만 그만큼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숨쉬는 앨범이다.

3집 라이브 앨범 '95 다른 하늘이 열리고'
이 앨범을 자세히 들어보면 서태지는 이 라이브 무대가 팬들과 가지는 마지막 무대하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통해 무대에서 불러지는 모든 노래들은 전부 새롭게 리메이크 작업했다. 그만큼 새로운 영감을 가지고 만든 무대가 바로 이 앨범에 녹아 있다. 같은 곡이라도 새로운 실험을 통해 재탄생 시키려는 그의 음악적인 의지가 엿보인다. '다른 하늘이 열리고'란 앨범 타이틀처럼 다른 하늘을 꿈꾸는 서태지의 고민이 무대와 노래 안에 숨어 있다. 팬들에겐 수수께끼 같은 앨범이다.

2집 라이브 앨범 '93 마지막 축제
2집 이후로는 사회 비판에 관심을 가지는 시각을 담게 된다. 그만큼 오락적인 부분이 충분히 살아 있는 무대. 언제나 그렇듯이 팬들에 대한 서태지의 사랑을 읽을 수 있는 무대다. 보는 만족과 듣는 만족 두 가지를 선물한 열정적인 무대. 그런 무대를 담은 앨범인 만큼 실제 라이브도 1집 때보다 더 역동적인 힘이 느껴진다. 두 번째 라이브 무대는 3집에 대한 어느 정도의 여운과 함께 오락적으로 팬들에게 봉사하려는 모습이 엿보인다. 역시 '서태지와 아이들'이란 것을 느낄 수 있는 앨범.

태지의 영원한 동반자
'서기회'(서태지와 아이들 기념 사업회)
지금까지 가장 모범적인 팬클럽으로 꼽힌다. 가장 조직적이며 꾸준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서기회'는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후 더욱 더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화보도 발간하고, 회원들간 MT도 떠나는 등 가수 없이도 그들의 음악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팬클럽. 지금은 오프 라인은 폐쇄한 상태고 온라인만 존재한다. 태지에 관해 가장 빠르고 가장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다.
서기회 홈페이지 http://seokihei.alpha.co.kr/
서기회 음성 사서함 152-2892, 152-0881

은퇴 후 양현석, 이주노의 활동 일지
가장 먼저 방송에 컴백한 이주노. 그는 음악이 아닌 라디오 DJ로 먼저 팬들을 만났다. 이로써 '서태지와 아이들'에 관련된 많은 소문과 루머가 일단락 지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또한 ING라는 연예 기획사를 설립하고, 그 첫 번째 작업으로 '영턱스 클럽'이라는 남녀 혼성 5인조 그룹을 기획해 제작자로서의 변신에 성공했다. 얼마 전 '바이오닉 주노'라는 본인의 랩 솔로 앨범도 발표했다.
일명 '양군'으로 통하는 양현석은 가요계 힙합 선두 주자로 자리잡았다. 지누와 션으로 구성된 2인조 힙합 듀오를 경성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양현석이 설립한 기획사는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그의 별칭을 그대로 사용한 양군 기획. '지누션' 외에 힙합 그룹 '원타임' 그리고 그 중간 본인도 솔로 앨범을 내는 등 가요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작년엔 본인을 포함한 기획사의 모든 가수를 하나로 통합 'YG 패밀리'라는 대형그룹을 조직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힙합을 이끌어 나가고 있는 장본인.
힙합 전령사 양현석
테크노 전령사 이주노

태지를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출구
우리들의 젊은 대통령
'서태지와 아이들' 외에 듀스, Ref, 클론 H.O.T, DJ DOC에 관련된 글들을 모았다. 댄스 뮤직 가수들돠 PD와 방송작가들이 썼다. (구지형 외 엮음/오상).
서태지와 아이들 그리고 아무도 없는가
은퇴 2년 후에 지어진 책. 5년 동안 '서태지와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생각한 것들을 비교적 솔직하게 적어놓았다. (강명석 김진성 / 프리미엄북스)
서태지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다
다문화, 세대 문화, 서태지 효과를 비롯 서태지에 대해 보다 직접적으로 다가가고 있다. 랩과 힙합, 펑크, 하드코어에 대해 태지가 발표한 노래들과 연결해 서술해 놓았다. (이동연 / 문화 과학사)

Seo Tai Ji 제6장 FASHION LEADER

FASHION
가격표를 떼지 않은 채 그대로 방송에 입고 나왔던 1집 때의 서태지를 기억하는지. 태지는 파격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설명하기보단 자유주의라는 말을 인용해 이야기하는 것이 더 가깝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일, 전혀 생각지 못한 것들, 그런 새로운 문화 혁명이 가능했던 것은 태지라는 인물이 대중 문화 안에 존재했기 떄문이다. 앨범마다 새로운 스타일로 변신해 성공해 온 패션 센스.

1집 귀엽고 발랄한 보이기
1집 타이틀 곡인 '난 알아요'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은 장난스럽고 귀여운 보이시 룩을 선보였다. 이건은 밝고 건강한 그들의 음악과도 무관하지 않다. 랩과 댄스로 이들의 음악에 스쿨 룩은 더없이 잘 어울렸다. 특히 태지는 상표나 가격표를 떼지 않은 모자나 의상을 그대로 무대에 입고 나와, 한때 청소년들 사이에서 상표를 달고 옷을 입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이외 한 쪽 멜빵을 어깨에 그대로 늘어 뜨리는 양현석의 '멜빵 바지'와 서태지가 유행시킨 '어깨에 메는 작은 가방'은 그들의 음악 못지않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여러 사람들이 공유했다. 본격적인 '이미지 메이킹(Image-making)' 시대가 온 것이다.

2집 자유주의 표현, 힙합&레게 스타일
역시나 '서태지와 아이들'이었다. 1집의 단정한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힙합&레게  스타일. 2집 앨범에서 새롭게 시도한 음악 장르 '레게'와 '힙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패션 역시 어색하면서도 조금은 낯선 모습이었다. 지금은 어른, 아이 모두 사랑하는 패션이 되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이들이 선보인 스타일은 충격이었다. 자신의 사이즈보다 서너 치수는 큰 통 큰 바지를 질질 끌고다니며 거리 청소하는 마니아들이 형성되면서 낯설레 느껴졌더 힙합 스타일은 엄청 유행한다. 팬션뿐 아니라 이주노가 처음 시도 했던 꼬불꼬불 '레게 퍼머' 스타일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조금은 생소한 탓에 방송 출연 불가 판정을 받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3집 파격적인 고급스러움 중세 기사도 스타일
서태지가 치마를 입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지의 이번 스타일은 중세풍. 1 2집에서 비교적 청소년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패션을 선보였다면 3집에서 음악과 함께 기존의 정돈된 이미지를 탈피했다. 사회 비판적 의식을 주로 담고 있는 만큼 약간 고급스러우면서도 전위적인 느낌이 드는 중세 분위기의 패션.
태지는 바지 위에 치마를 덧입어 중세의 고급스런 분위기를 자아낸 반면, 이주노와 양현석은 편한 스타일로 2집의 티셔츠에 힙합 스타일 바지를 고수했다. 액세서리로 야구 모자를 착용하는 정도. 교육 현실을 비판한 '교실 이데아'에서는 '발해를 꿈꾸며'와 달리 강한 이미지를 심기 위해 세 명 모두가 통일된 밀리터리 룩을 선보였으며, 의상 이외의 소품은 최대한 절제했다.

4집 서로 다른 개성의 조화 스노보드 스타일
태지의 깜짝 패션쇼.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스노보드룩을 선보였다. 사실 스포츠가 인기 있었던 거지 감히 그런 의상을 방송용으로 입고 나오리란 생각은 그 누구도 하지 못했다.
4집 타이틀 곡임 '컴백 홈'에서는 스키장에서 사용하는 털모자, 고글을 그대로 착용해 역시 그들답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헤어스타일에도 파격 변신, 서태지는 턱선까지 머리를 길러 단발 스타일에 털머자를 쓰고 나왔다. 이주노는 마스크를 착용, 외부에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아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양현석은 기존 그들의 힙합 스타일을 고수 대중과 태지와의 중간적인 입장을 취했다.
후속곡인 '필승'에서는 머리 색깔을 각각 태지는 빨강, 현석은 보라. 주노는 초록으로 물들여 그 당시 생소했던 염색을 유행시켰다. 거리엔 온통 빨강, 파랑, 초록 등 원색 헤어스타일이 대유행, 우리나라 헤어 컬러링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일조했다.

태지 헤어스타일 따라 잡기
↑ '시나위' 시절 태지. 길게 늘어뜨리고 분수처럼 부풀은 앞머리가 포인트.
↑ 2집 컴백 후 '하여가' 스타일. 이마를 살짝 가린 앞머리가 잘 어울린다.
↓ '난 알아요' 데뷔 당시. 주로 모자를 쓰고 나왔는데 동그랗게 말린 앞머리가 귀여운 외모와 잘 어울렸다.
↓ '하역' 후속곡인 '너에게로'를 부를 때. 그동안 단정했던 범생이 머리에 앞머리를 빨갛게 염색한 모습이 새롭다.
↑ 3집 '발해를 꿈꾸며'. 달걀 모양처럼 타원형을 이루고 있는 앞머리. 곱게 빗어 내린 앞머리가 노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 4집 '컴백 홈' 스타일. 데뷔 후 태지의 머리 기른 모습은 처음이다. 단발 스타일에 스키 모자를 눌러 써 스노보드 룩에 어울리는 헤어스타일 완성.
↑ 4집 '필승'. 터프하며 섹시하기도 하다. 입술까지 내려오는 긴 앞머리. 전체적으로 앞머리에 층을 많이 냈다.
↓ 은퇴 직전 촬영한 카운트다운 CF에서 다시 검정색 머리로 돌아왔다. 필승때와는 컬러만 바뀌고 전체적인  스타일은 비슷한 편. 약간 짧아지고 레이어드가 많이 들어갔다.
↑ 은퇴할 때, 공식적인 마지막 자리여서 그런지 그 어느 때보다도 단정한 헤어스타일로 나타났다.

DANCE
음악의 장르에서 뿐만 아니라 패션 스타일, 댄스에 있어서도 서태지는 우리의 사고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모스을 보여 주었다. 특히 이주노의 안무로 선보인 고난도의 힙합 댄스는 지금까지 많은 젊은이들이 사랑하고 있는 힙합과 다르지 않다.

1집 강렬한 회오리 댄스
개그맨 박수홍이 즐겨 추는 '회오리 춤'의 원조는 '서태지와 아이들'. 국내 팬들에게는 낯설었던 '랩'과 헤비 메탈'적 요소가 강하게 풍겼던 타이틀 곡 '난 알아요'는 강하고 빠른 비트에 어울리는 '회오리 춤'을 탄생시켰다. 양쪽 발은 토끼터럼 뛰면서 발과 엇갈려 양 손을 번갈아 머리 위로 젖히는 이 춤은 '난 알아요'를 알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기존에 유행했던 유연하게 이어지는 춤과는 달리 '회오리 춤'은 한 종작 한 동작 끊어지도록 격렬하게 추는 춤. 이외에 후속곡 '이 밤이 깊어지지만'에선 느린 템포의 곡에도 춤을 출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케이스. 기존 가요계에 신선한 중격을 안겨줬던 시기다.

2집 자유주의 힙합 댄스
앨범 발매 당시까지 국내에선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레게'와 '힙합' 장르의 붐을 일으킨 '서태지와 아이들'은 그에 어울리는 '힙합 댄스'를 처음 선보였다.
1집에서보다 조금 더 어려운 고난도의 춤을 선보였는데, 특히 전형적인 하드 록과 태평소를 통한 전통적인 한국 리드믈 접목시킨 타이틀 곡 '하여가' 에서는 이주노가 2단계로 허리를 꼬아서 추는 수준 높은 '힙합 댄스'를 선보여 주목받았다.
'하여가' 이후 많은 댄스 가수들이 각자의 스타일에 어울리는 힙합 댄스를 선보이는 등 1993년 여름 가요계는 온통 '힙합 댄스' 열풍이었다.

3집 유연한 몸놀림, 버터플라이 댄스
제 3집이 음악의 다양성에 있었다면 그들의 춤 또한 정형성에서 탈피했다. 하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의 춤엔 언제나 힙합이 기본으로 잠재되어 있고, 그 안에서 다양한 댄스와의 접목을 시도했다. 특히 나비의 움직임처럼 굴곡이 많은 '버터플라이 댄스'는 '발해를 꿈꾸며'와 아주 잘 조화를 이루었다. 대체적으로 안무가 입체화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늘 똑같이 서서 같은 안무를 선보였던 것과는 달리 이때는 2 : 1 구조로 서태지가 앞으로 나오면 이주노와 양현석은 뒤로 빠지는 등 보다 역동적인 댄스로 무대를 살렸다.

4잡 고난이도 힙합 댄스
1집부터 3집까지 '서태지와 아이들'의 안무는 주로 이주노가 담당했다. 하지만 4집 앨범에선 양현석이 안무를 구성해 지금까지 그들이 선보였던 춤과는 다른 막을 보여 주었다. 4집 '컴백 홈'의 댄스는 갱스터 랩에 맞게 절제된 안무 속에 들어 있는 연결된 동작이 가장 눈에 띈다. 역시 힙합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강한 분위기를 나타내기 위해 안무된 무거운 동작들이 인상적이다. 특히 간주 부분에 이주노와 양현석이 함께 구성하고 있는 안무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둘이 하나가 되어 고리처럼 움직이는 이 안무는 10대들이 장난 삼아 길거리에서도 많이 따라했다. 소을 머리 위로 올려 끊어지듯 이어지는 동작은 특히 '1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에 많이 응용되어 3집에서와 마찬가지로 무대를 역동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서태지와 아이들' 외 백댄서들도 앞뒤로 움직이며 추었다. 섬세한 안무 연출보다 무대가 좁게 느껴질 만큼 동작이 크게 구성되어 얼터너티브의 음악적 특성을 잘 살렸다. 

Seo Tai Ji 제7장 TAIJI PHOTO ESSAY

#그가 건강해서 다행입니다
뚱뚱해졌다, 몸이 아프다... 많은 루머에 시달린 태지. 태지의 음악보다 태지의 밝고 건강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서 안심이다. 가장 중요한건 태지니까.

#그가 행복해보여서 다행입니다
누구보다도 팬들을 아끼고 사랑했던 태지. 떨어져 있는 동안 서로가 서로를 그리며 보낸 슬픔 가득한 나날들. 팬들을 본 순간 그의 입가에 번지는 환한 웃음. 행복해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의 음악을 들어서 행복합니다
음악 없이 살아갈 수 있을지 많이 걱정했다. 태지도 그리고 우리도... 이제 그가 선물하는 전혀 다른 음악. 많이 기다리고 기대한 만큼 값지게 들어야지. 태지의 땀과 사랑이 배어 있는 음악일 테니까.

#그를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 사랑한다는, 많이 보고팠다는 그리고 많이 그리워했다는 말. 이젠 그런 기억들 지워도 되겠다. 태지랑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땅을 밟으며 숨쉴수 있으니까.

Seo Tai Ji 제8장 COMEBACK REPORT

태지를 쫓는 카메라들, 카메라들..
인터넷 홈페이지 서기회를 통해 8월 11일 서태지가 컴백 의사를 밝힌 후 8월 한 달 언론의 취재 경쟁은 대단했다. 태지의 컴백에 대한 언론의 반응, 관심도, 컴백 일지 들여다보기

2000 829 PM 6:45 태지 컴백 홈
↑ 휩쓸 태지 대형 현수막. 태지가 오면 분명 어지러운 가요계를 휩쓸 거야.
↑ '태지가 있는 세상은 늘 깨어 있다' 통로를 가득 메운 태지 마니아
↑ 자유주의 태지를 반기는 문구.
↑ 발딛을 틈 없이 공항을 가득 메운 팬들. 태지 음반 걱정 없다!
← 태지 사진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전경들. 누굴 위한 전경일까?
↑ 4집 '컴백 홈' 때 헤어 스타일인 단발로 돌아온 서태지.
↑ 노란 손수건을 손목에 묶어 태지에 대한 사랑을 표했어.
↑ 비행기에서 내려 통로를 걸어 나오고 있는 태지 모습.
↑ 손을 한들어 팬들의 사랑에 답하고 있다.
↑  태지 영문 이름이 새겨져 있는 노란 손수건을 손목에 감아 흔들고 있다
↑ 검은 뿔테 안경이 태지에게 참 잘 어울린다

기사 내용 발췌 / 스포츠 서울 일간 스포츠 스포츠 조선

서태지의 컴백은 당연한 명제
심형만 (m. net '타임 투 록' PD)
서태지의 컴백은 옳다, 옳지 않다로 논쟁을 벌일 이유가 없다. 서태지의 컴백은 당연한 것이다. 가수가 음악을 하는 것은 당연한 명제다. 단 하나. 이번엔 새로운 스타일의 하드코어 음악을 들려줄 것이라고 하는데 그런 말은 옳지 않다. 서태지는 이미 2집 앨범 때 '하여가'를 시작으로 '발해를 꿈꾸며' '필승' 등을 통해 우리에게 조금씩 하드 코어를 느끼게 해주었다. 타이틀 곡 '울트라 맨이야'가 하드 코어라는 장르라고 서태지가 처음 시도하는 음악인 것처럼 말하는 건 옳지 않다. 그는 아주 오래 전 우리에게 새로운 음악의 시대를 열어주었다.

제9장 MUSIC VIDEO

난 알아요
발해를 꿈꾸며
컴백 홈
필승
필승
Take One

m. net Conc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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