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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태지의 '촌스럼(?)이 좋다. (학술지)
by stjarchive
조회 4708 (2011.10.28)  
발행일 2000-12-01 
시기 6집 
저자 전신화 
학위논문사항  
지도교수  
출판년도 2000년12월 
발행처  
학술지명 인물과 사상 
통권 2000년12월호 
내용구분 대중문화, 사회쟁점 
분량 전체 
link 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00097391 
CCL  
첨부파일 2000_484.txt 

[인물과 사상12월호][반론] 나는 서태지의 `촌스럼(?)`이 좋다. 

[월간 인물과 사상]12월호
나는 서태지의 '촌스럼(?)이 좋다.

정치성을 거세하는 '핌프'비평 조흡 씨에 대한 반론
- 글 : 전신화

 

1. '은퇴선언', 무엇이 문제인가.
나도 조흡씨처럼 '은퇴선언'이 못마땅한 사람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조흡 씨와는 달리 나는 마땅히 이 선언이 번복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 나라의 이 특이한 현상, 많은 사람들이 못마땅해하는 이런 '은퇴선언' 현상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몇몇 유명한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참 활동을 하고 휴식기를 가지면서 재충전을 한 다음 다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 이상적인 모습이라면, '은퇴선언'은 이런 정상적인 리듬을 갖는 것이 불가능해진 막다른 골목에서 택하는 최후의 수단이다.(물론 경우마다 다르긴 할것이다. 최고의 순간에 아름답게 남기 위해, 돈을 벌만큼 벌었으니 이젠 편하게 쉬고 싶어서, 기타 등등의 이유도 있다. 이런 이유조차 단지 '개인적'인 미성숙의 문제가 아님은, 가령 운동을 자체로 즐기면서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메달을 따기 위해 선수를 육성하는 우리 나라 체육 현실을 봐도 알 수 있다.)
가능성을 키우고 성과를 인정하기보다 깎아 내리기에 급급한 언론의 곡해성 보도, 지나친 기대로 인한 부담이 한 개인을 '은퇴선언'으로 몰아가는 우리문화의 기형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조흡 씨의 말을 빌어 "사회구성원들끼리의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지는 과정"으로서의 문화를 연 한 개인의 창조성 차원으로만 설명하려 드는 낭만적 사고와 다를 바 없는 비판이 될 것이다. 한 개인의 도덕성 운운에 앞서 이런 기형성을 낳는 우리의 문화현실을 먼저 반성해야 하고, 오히려 은퇴선언을 번복할 수 있는 조건, 은퇴선언을 할 필요가 없는 현실을 만들도록 노력할 일이다.


2. 신기루 서태지?
문화를 '사회적 과정의 산물'로 보아야 한다는 조흡 씨의 말에 동의한다. 이해가 안되는 것은 그의 또 다른 이론들, "작가는 작품을 '창조'한다기 보다는 기존의 모든 텍스트를 모방하고 표절하며 인용하고 주석을 달면서 재조합 시킨 결과 색다른 유사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뿐"이라는 말이다. 작품을 한 개인의 천재적 영감과 창조성만으로 설명하려 드는 소위 '낭만적'사고에 대한 반대로서, 그 개인이 속한 사회와 문화의 흐름 속에서 봐야 한다는 생각에는 공감을 한다. 그러나 나로선 사회 구성원간의 상호작용으로서의 문화관이 모든 주체성을 부정하는 텍스트 모방론과 어떻게 별 마찰없이 사이좋게 제시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전자에서는 분명 상호작용을 하는 사회구성원의 주체성이 인정되듯 보이는데 말이다. 이렇게 서로 충돌하는 두 가지 문화관이 어설프게 묶여진 결과가 그의 글 곳곳에서 보인다. 위 은퇴선언에 대한 그의 짧은 생각이 그 한 예일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후자의 텍스트 모방론에 따라 서태지는 신기루, "사막의 허깨비"요 "언론이 만들어 놓은 허상"일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조흡 씨는 내내 언론 못지 않은 자신만의 '허상 서태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글에서 가장 거슬렸던 것은, 서태지의 반응과 행동에 대한 그의 추측성, 과장성 심리묘사들이었다.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는", "당황스러워 한다 처음 듣는 소리이기 때문", "서태지는 당혹해 한다", "서슴없이 남용" 등. 나는 이 부분들을 읽으면서 정말 당황스러웠고 당혹해했다. 언제, 어디서 서태지가 엇갈린 평가에 섭섭해하고 '최신음악 수입'이란 얘기에 처음 듣는 소리라 당황스러워 했단 말인가. 오히려 후자의 얘기는 그가 기자회견장이나 다른 인터뷰에서 그 자신의 음악작업을 겸손하게 그렇게 표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확히 어떤 대목에 대해 어떤 근거로 그런 발언을 하는지 묻는 건 비평가로서의 기본도리에 대한 정당한 요구라 생각한다. 단순한 '인상비평'을 하는 수준의 글이 아니라면 말이다.


3. 팬들은 무뇌아?
'사회구성원의 상호작용'이라는 말이 입바른 말에 그치는 것은 조흡 씨가 서태지 팬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확인된다. 그에 따르면 팬들은 서태지의 음악을 득고 극치의 쾌락에 "광적인 오르가즘"을 느끼고 "무조건적 반사반응"을 보이는 맹목적인 수용자이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이렇게 폄하된 무뇌아 팬들은 신기루 허깨비 서태지를 영웅시하는데 그건 그들이 "그의 음악을 현실을 반추하는 수단"으로 삼고 "그의 음악에서 자유로움과 비판적 메시지"를 찾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선 "무조건적 반사반응"과 "현실반추"가 어떻게 양립 가능한지 묻고 싶다. 서태지에 열광할 때는 무뇌아가 되었다가 허깨비 음악을 자신들의 현실세계에 적용할 때는 똑똑해지는 서태지 팬들? 그가 인용하는 "나는 뮤지션일 뿐 사회운동가로 보지 말라"는 서태지의 말이 어떻게 팬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것이 조흡 씨가 만들어낸 허상 서태지의 과장성 추측성 심리묘사라면 모를까. 서태지의 팬들은 '뮤지션' 서태지의 팬들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의 말이 그의 음악에 어떤 현실적인 의미가 있다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그의 음악을 통한 것이지 음악과 동떨어진 무슨 선언이나 선동이 아니라는 의미로 읽힌다.


4. 허상과 실체는 같은 것?
이렇게 조흡 씨 글에서 팬들이 무뇌아가 되었다가 똑똑한 비판자가 되었다가 널뛰기하는 것은, 그것이 "락 뮤지션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철학"도 없는 서태지의 허깨비음악을 질타하기 위해서 씌어졌기 때문이다. 그에게 서태지는 상식적인 기본철학도 없이 단순히 소리만 실험하는 테크니션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 테크니션이 팬들에게 영웅시되고 언론에 떠받들여 지는 것이 못마땅하므로 서태지를 "있는 그대로" 평가해 "실체"를 알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고 그의 글은 그런 작업의 하나라는 것이겠다. 서태지의 "있는 그대로의 실체"가 무엇인지 나도 정말 알고 싶다. 적어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실체가 절대로 조흡씨가 가진 '허상', 서태지는 아니라는 점이다. 실례지만, 당신의 허상이 허상이 아니라는 증거가 무엇이오, 묻고 싶다. '정현철'로서의 그, 태지보이스 시절의 그, 미국에서 홀로 자유로이 음악작업하는 그, 팬들과의 관계, 언론과의 관계....., 이 중 어느 하나가 서태지의 실체를 밝혀 줄 수는 없으며, 이 모든 것이 서태지를 구성하면서도 그 모두를 다 더한다해도 서태지가 되지는 않는다. 정답을 알 사람은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서태지는 신기루라는 조흡 씨의 말에 동의하는건 아니다. 여전히 그가 주장하는 "텍스트의 침전"으로서의 작가와 결말에 서태지를 비난하는 근거인 "의도적인 실험"이 어떻게 한데 어울릴 수 있는지 의문스럽지만 그것은 일단 덮어두기로 하자.
서태지 개인의 경험만으로 그의 창조성을 설명하려는 것이 문제라는 데는 동의한다고 했다. 그것은 그의 경험이 개인만의 경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겪어온 것들은 그가 우리의 열악한 사회문화 현실에 몸담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음악을 하고 싶어 고등학교를 중퇴하면서 그가 느끼고 부딪쳤을 것들, 밴드생활, 무엇보다도 그가 소위 상업적 성공을 거두면서 겪은 기존 제도권과의 충돌..., 기존관습을 역류하면서도 주류의 흐름을 바꿔 가장 성공적인 음악인이 된 그를 제대로 보려면 이렇게 우리 나라가 처한 특유의 사회문화현실에 대한 이해가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현실속에서의 절절한 경험들과 느낌들을 배제하는 조흡 씨의 눈에는 그의 음악이 허깨비로밖에 보이지 않고, 그의 음악에 공감하는 팬들의 몸짓은 무뇌아들의 광란으로 비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서태지가 나서서 자신의 실체, 자기 음악의 실체는 이거다 라고 말한 걸 본 적이 없다. 그는 언제나 음악을 들어 달라고 한다. 그렇담 그의 음악은 어떠한가?


5. 자유의 몸짓
나는 전문 음악비평가가 아니다. 겸허하게 전문가들의 좋은 비평이 나오길 기다리며 열심히 읽고 듣는 중이다. 소리만을 실험하는 테크니션? 난 왜 조흡 씨가 가사에 대한 얘기를 전혀 안 하는지 궁금했다. 소리만을 실험한 별 생각없는 음악인이 붙인 가사라고 하기에는 예전의 "교실이데아"나 이번 6집의 "탱크", "오렌지", "인터넷전쟁", "대경성".... 등의 가사들은 그야말로 아프고 가려운 데를 꼬집듯이 시원하면서 절묘하다. 인터넷문화가 성한지 한참, 그 난극상과 가능성을 동시에 지닌 복마전의 장을, "인터넷전쟁"처럼 소리와 잘 버무러져 어울리면서 기막히게 묘사해 낸 노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울트라매니아"의 '매니아론'은 또 어떤가. 그리고 락 음악에서 상상할 수 없는 립싱크를 "서슴없이 남용"한다는 서태지가 컴백쇼 이후로 언제 그렇게 립싱크를 남용했는지 조흡 씨한테 묻고 싶다. "앞으로도 최상의 사운드를 위해서라면 반주녹음과 립싱크"를 하겠다는 발언의 정확한 출처도 밝혀 달라. 자기 음악의 특성상 부분 립싱크를 쓸 수도 있다고 한 말을 기억난다. 말은 바로 해야 한다.
서태지가 계속 자신의 프로젝트 밴드들과 연습을 하면서 라이브공연을 하고 있다는 말은 들어봤는지 모르겠다. 그가 단순히 핌프락과 테크닉만 수입하는게 아니라 그의 팬들에게 흥겨운 공연문화를 소개하고 있다는 것은 조흡씨도 아는것 같긴 하다(역시 왜곡된 방식으로, 오르가즘과 해방의 순간 운운한 걸 보면).
그런데 여기서도 곡해의 우려가 있는 것은, 조흡 씨 말처럼 팬들이 "무조건적"으로 몸을 흔들고 광란에 빠져든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몸들은 '얌전해야 한다', '점잖아야 한다'라는 말들과 , 학교에서 사무실에서 책상에 앉아 버티는 생활로 오래 길들여져 마음은 뛰는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알기론 팬들은 자 이렇게 해봐, 흥겹지 않니 하는 서태지의 무언의 권유에 조금씩 뻣뻣한 몸들을 풀고 리듬에 맞추고 음악을 몸으로 느끼는 걸 익히는 과정에 있다. 저항자들도 있고, 예전처럼 얌전히 의자에 앉아 형광봉을 흔드는 사람들도 있다. 서태지는 절대 목청 높여 이렇게 해야 한다고 무슨 선언을 하는 법이 없다. 언제나 음악보다 말이 앞선 적이 없고 다양성을 포용한다.
조흡 씨의 원색적인 묘사와 표현과는 달리 팬들이 익혀 가는 이 자유와 해방의 몸짓들은 무뇌아적인 무조건반사가 아니라 바로 현실을 반추하게끔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서태지의 공연은 밴드와 팬이 어우러져 함께 노래하고 "놀아보는" 한판의 난장이다. 이렇게 단순한 생산자와 수용자의 관계를 넘어선 서태지와 서태지 팬의 관계가 조흡 씨에게는 모순과 아이러니로만 보이나 보다. 서태지가 들고 온 핌프락을 그가 진정으로 즐기지 못하는 한, 그는 절대 난장문화의 정치성을 "몸으로" 알 수 없을 것이다.


6. '핌프' 비평 유감
'수입완제품'운운은 정말 유감스럽다. 그의 텍스트 침전론 역시 외국 비평 이론의 수입인바, 게다가 사회적 과정으로서의 문화론과 어설프게 버무러진 그의 글이 수입완제품보다 못한 잡설에 떨어지지 않을 만한 자신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어차피 작가는 허깨비요 그저 모방하고 표절하며 인용하고 주석을 달아 재조합하는 것일 뿐이라고 변명을 늘어놓을 것인가. 비평가들의 표절에 대한 역질문에 모든 비평가들은 반성해야 한다. 문제는 외국 이론이나 음악을 들여오는게 옳으냐 아니냐가 아니다. 현 우리 문화에서 순수한 우리 것인게 도대체 얼마나 될까. 세계화를 논하는 세상이고 IMF로 그 현실을 톡톡히 깨달은 우리 국민들이다. 세계화 세상이니 굳이 우리 것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도 아니다. 우리만의 특수한 역사가 있고 현실이 있다. 그 속에서 부대끼며 얻은 우리의 감수성이 있다. 수입이냐 아니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바깥 세상의 뛰어난 것을 보고 듣고 그 중 좋은 것을 우리 특유의 감수성으로 소화해 내는 작업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조흡 씨의 글에서 그런 소화를 위한 노력을 찾아볼 수 없어 안타까웠다.
나는 서태지의 팬이 아니었다. 6집이 하드코어 계열의 음악을 했다고 해서 평소 락을 좋아했던 터라 샀다가 중독될 만큼 좋아하게 되었다. 그의 이번 앨범에서 나는 바로 그런 그만의 감수성으로 한 장르를 소화해내려는 노력을 본다. "미국의 비주류음악이 한국의 주류문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 이해하기 힘들다는 조흡 씨의 지적이 나는 이해하기 힘들다. 우선 벌써 핌프락이 우리 나라에서 주류가 되었는지도 의문스럽고, 그의 지적은 미국의'주류-비주류'음악 간의 관계와 우리나라 '주류-비주류'의 그것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일말의 고려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 특유의 문화지형과 세계화 흐름간의 역학에 대한 고민이 서태지라는 한 음악인의 행보를 읽는데 조금이라도 들어갔다면, 그가 내세우는 '사회적 과정'으로서의 문화론이 머릿속에 박힌 허상에 따른 인상비평에서 빛 좋은 개살구가 되지는 않았을 터이다.
댄스가수가 판치는 획일적인 음악산업의 흐름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류와 비주류의 선긋기가 아니다. 미국의 비주류 음악이 우리의 이 열악한 현실에서도 비주류여야 한다고 고집하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려 드는가. 지금 우리에게는 주류와 비주류의 엄청난 간극을 넘나들며 기존 제도권 문화계를 뒤흔들고 주류음악의 다양화를 꾀하고 극소수의 문화로만 남아 있는 비주류 음악에 숨통을 틔우는 일이다. 서태지가 바로 그러한 일을 하는 음악전사라고 아직은 말하지 않겠다. 그런 부담을 그에게 지우고 싶지도 않다. 앞으로 더 두고봐야겠지만 그가 가능성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열려진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것은 그의 음악에 공감하고 그 공감으로 방송국과 기획사의 담합으로 기껏해야 현상유지에 급급한 가요판에 저항하는 팬들과 음악에 혼신의 열정을 쏟아 붓는 후배음악인들의 몫이기에.

나는 이제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으로 좀더 서태지에 대해 음악장르에 대해 '공부'를 해야겠다고 느끼는 중이다. 때가 되면 그의 음악과 그의 팬이 만드는 문화공간에 대해 좋은 글을 쓰고 싶다. 조흡 씨에게는 이렇게 권하고 싶다. 혹시 시간이 되면 인터넷의 서태지 팬사이트를 다니면서 무슨 말들을 하는지 좀 들어보라고. 극성스런 팬들의 소리를 들을 시간이 없고 필요성도 못느낀다면 최소한 한 번이라도 서태지의 음악을 틀어놓고 머릿속의 무수한 상념들과 헛된 말들을 잠시 비우고, 몸으로 음악을 느껴보시라고. 서태지의 극성팬이 아니면서도 나에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훨씬 세련되었다는 콘의 '오리지널'보다, 같은 한국인인 서태지의 감수성을 통과한, (조흡 씨의 귀에는) "촌스런"핌프락에 나의 몸과 정신이 더 신나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허상에 따라 허깨비를 만들어 내는 "있는 그대로의 실체"운운하는 비평이 아니라 서태지가 가진 가능성과 그 가능성을 음악으로 구현해내는 그의 작업에 대해 열린 귀와 눈으로 평가하는 작업이 아쉽다. 과거와 지금의 음악이 이룬 것만큼 앞으로의 음악에 대해 기대하게끔 하는 이 "음악인"이, 그 음악인을 믿어주며 함께 다양성이 확보되는 음악판을 만들어보자고 다짐하는 그의 팬들이 나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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