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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계의 변화에 관한 연구 (학술지)
by 노란우산
조회 5344 (2012.03.05)  
발행일  
시기 7집 
저자 정하나, 최현숙 
학위논문사항  
지도교수  
출판년도 2005년 4월 
발행처 한국패션디자인학회 
학술지명 한국패션디자인학회지 
통권 제5권 제 1호 
내용구분  
분량 부분 
link http://dbpia.co.kr/view/ar_view.asp?arid=1054913 
CCL  
첨부파일 199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계의 변화에 관한연구.pdf 

국문초록
대중예술은 대중성과 상업성을 중심으로 시대를 반영하며 그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의 정서에 기반한다. 다양한 대중예술 중에서도 대중음악은 시대의 흐름과 맥을 같이하며 시대의 정신을 보여주고, 더 나아가 대중의 의식과 흐름을 바꾸어 놓거나 때로는 앞장서서 주도해가기도 한다. 세계적인 가수 밥 딜런(Bob Dylan)이나 존 레논(John Lennon) 등은 반전 운동 가수로 유명하며, 밥 딜런의 경우 노벨평화상과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도 1970년대 청년문화를 주도했던 록과 포크가수들, 1990년대 젊은이들의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서태지 등은 대중음악계 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대중음악이 가진 사회적 의미와 시대의 반영은 1990년대 이후 한국 대중 음악계의 변화와 함께 의미가 퇴색하였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의 대중음악시장은 음반 산업, 방송매체, 매니지먼트 산업 등의 규모와 함께 팽창하기 시작하였고, 대중 음악 생산의 핵심으로 부상한 프로듀서가 확산되었다. 이로 인해 음악보다는 가수의 춤과 외모가 더 중요해졌고, 가창력이나 음악성으로 승부하는 가수가 아닌 엔터테이너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본 고에서는 대중음악이 가진 사회적 의미와 규모의 팽창과 함께 산업으로 부상한
199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계의 변화를 현재 막강한 영향력을 차지하고 있는 SM과
JYP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또한 이들의 영향력을 중심으로 한국 대중음악계
의 문제점과 함께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통해 음악공연의 활성화와 전문음악공연장
의 설립을 제안하며,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Ⅰ. 들어가며
대중예술은 대중성ㆍ오락성ㆍ통속성ㆍ상업성을 중심으로 시대를 반영하며 그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의 정서에 기반 한다. 다양한 대중예술 중에서도 특히 대중음악은 시대의 흐름과 맥을 같이하며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대중의 의식과 흐름을
바꾸어놓거나 때로는 앞장서서 주도해가기도 한다. 세계적인 가수 밥 딜런(Bob Dylan)이나 존 레논(John Lennon) 등은 반전 운동 가수로 유명하며, 밥 딜런의 경우 노벨평화상과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밥 겔도프(Bob Geldof)는 1985년 7월 13일, 아프리
카 기아 난민을 돕기 위해 치러진 ‘Live Aid’ 콘서트를 주도하여 연예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평화상 후보에 지명되었다. 비틀즈는 1960년대 대중음악과 청년문화를 주도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1970년대 청년문화를 주도했던 록과 포크가수들, 1990년대 젊은이들의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서태지는 문화대통령이라 불리며, 대중음악계 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서태지의 음악은 검열의 문제를 담은 <시대유감>, 한국 교육의 현실을 비판한 <교실 이데아> 등을 통해 대중음악이 담기 어려운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 충격을 주었다. 또한 1994년에 발표된 <발해를 꿈꾸며>는 2002년도 고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음악이 가진 사회적 의미와 시대의 반영은 199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계의 변화와 함께 그 의미가 퇴색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의 대중음악시장은 음반산업, 방송매체, 매니지먼트 산업 등의 규모와 함께 팽창하기 시작하였고, 대중음악 생산의 핵심으로 부상한 프로듀서가 확산되었다.1) 이로 인해 음악보다는 가수의 춤과 외모가 더 중요해졌고, 가창력이나 음악성으로 승부하는 가수가 아닌 엔터테이너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2007년도 음반판매량 총결산에 따르면 100위에 랭크된 곡 중 SM 엔터테인먼트(이하SM)의 경우 슈퍼쥬니어ㆍ소녀시대ㆍ동방신기ㆍ천상지희 등의 소속사 가수의 음반이 16곡으로 1위를 차지하였으며, JYP 엔터테인먼트(이하 JYP)는 원더걸스ㆍ박진영ㆍ비 등의
음반이 4곡이나 선정되었다. 또한 2006년도 음반판매량에 있어서도 SM은 약 15%의 점유율로 1위를, JYP는 약 3%로 9위를 기록하고 있다.2) 이들 기획사는 한류 열풍과 함께 소속 가수들의 해외 진출도 활발하며, 이수만과 박진영이라는 프로듀서 겸 제작자를 중심으로 기획성 가수를 배출하는 등 공통점 또한 갖고 있다.


본 고에서는 대중음악이 가진 사회적 의미와 규모의 팽창과 함께 산업으로 부상한 199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계의 변화를 현재 막강한 영향력을 차지하고 있는 SM과 JYP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또한 이들의 영향력을 중심으로 한국 대중음악계의 문제점과 함께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통해 음악공연의 활성화와 전문음악공연장의 설립을 제안하며,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Ⅱ. 대중음악의 정의와 사회적 의미
대중음악은 범위와 개념이 넓고 모호하기 때문에, 정확하고 명료하게 정의를 내리기 어렵지만 일반적으로는 첫째, 규범적 의미로 하위 장르. 둘째, 부정적 의미로 예술음악도 아니고, 민속음악(folk)도 아닌 것. 셋째, 사회학적 의미로 특수한 사회집단인 대중에 의한,
대중을 위한 것. 넷째, 경제적으로 음반, 라디오, 텔레비전 등의 매스미디어를 전제로 하며, 음악 산업에 의해 유통되는 음악으로 정의되고 있다.


대중음악은 상업적인 목적으로 대량으로 생산되고 유통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매스미디어이다. 매스미디어는 대중음악을 소재로 하고, 대중음악은 매스미디어의 도움으로 대중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리고 대중음악은 음반 산업 뿐만 아니라 음악클럽, 노래방, MP3 등의 새로운 형태의 많은 문화적 수요를 창출해 내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대중음악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게 되고, 사회 지배적인 문화양식이 되었으며, 대중음악에 대한 문화적ㆍ예술적 가치의 평가도 새롭게 내려지고 있다.


이처럼 대중음악은 대중성 및 예술로서의 가치와 함께 산업적 요소,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요소 등 다양한 측면으로 접근할 수 있다. 로이 셔커는 대중음악에 대해 문화적으로 음악전통, 스타일, 그 영향의 혼종으로 구성되고, 수많은 소비자들에 의해 이데올로기적 중요성이 투여되는 경제적 산물이라 정의하고 있다.

또한 김영주는 대중음악은 문화적 산물이자 사회적 현상이며, 대중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중음악의 구체적인 실현에 개입하는 사회ㆍ문화적 요소들을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대중음악은 단순히 대중들이 즐기는 음악의 차원만이 아닌 사회적인 현상이며, 당대의 문화를 대변한다. 1950년대와 1960년대는 록과 포크 음악이 상당한 인기를 끌었는데, 당시 지배문화와 전통에 대한 거부정신으로 잉태된 록이 유행하고부터 대중음악은 더욱 시대와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었다. 1969년 뉴욕에서 거행된 우드스탁 페스티발은 1960년대 젊은 세대들의 의식과 록음악이 한데 어우러진 젊은이들의 문화행사였다.1964년 일어난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많은 젊은이들이 죽어갔고, 미국에서는 반전운동이 일어났다. 포크를 대중화하고 록이 1960년대 저항적 메시지를 촉발할 수 있도록 주도했던 밥 딜런과 존 바에즈를 필두로 한 포크음악인들은 그들의 음악을 통해 반전운동과 인종평등 등을 부르짖었다. 밥 딜런의 <Knocking On A Heaven’s Door>와 <Blowin’ In The Wind>는 반전가요로 커다란 인기를 얻었고, 베트남 전쟁이 끝나는데 커다란 역할을했다고 평가 받아, 노벨평화상 후보로까지 거론되었다.


또한 1985년 전 세계 음악인들이 함께 모여 인류애를 발휘한 ‘Live Aid라이브 에이드’는아프리카 기아 난민을 돕기 위해 구성한 콘서트이다. 영국의 웸블리 구장(7만 2천명 수용)과 미국의 J.F.케네디 스타디움(9만명 수용)에서 양국을 대표하는 스타들이 대거 출연한
이 공연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콘서트를 주도한 밥 겔도프는 그의 공로를인정받아 노벨평화상 후보에 지명되기도 하였으며, 이 콘서트를 계기로 조성된 기금은 아프리카 난민들에게 보내졌고, 세계인에게 ‘인류는 하나’라는 공동체 의식과 함께 이웃사랑의 본보기를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인류의 평화,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 등으로 사회에커다란 관심을 가졌던 대중음악은 1980년대를 거쳐 1990년대에 이르러 시대적 정신을 담기보다는 하나의 문화적 상품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경향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Ⅲ. 199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의 특징
우리나라에 서양음악이 도입된 것은 1885년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라가 배재학당을 개설하면서 지금의 찬송가에 해당하는 ‘찬미가’와 더불어 신식 노래인 ‘창가’를 보급시킨 것이 그 효시라 할 수 있다. 서양음악을 ‘창가’라고 부르게 된 것은 1872년 일본에서 유래한 소학교 교재로 ‘창가독본’이 보급된 것이 시초였다. ‘창가’란 말이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후에 ‘찬미가’나 학교 교재용 음악, 또는 신식군가 등을 모두 합쳐 ‘창가’로 통칭하게 되었다. 과거 우리나라의 대중음악은 시대와 더불어 흐르면서 유행하는 노래라는 의미의 유행가 또는 뽕짝 등으로 다소 비하하는 듯한 명칭으로 불렸고, 현재는 대중가요라는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국의 대중가요는 180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와 1990년대 이후의 음악 이렇게 두 시대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이는 음악의 생산적 측면과 함께 소비의 변화에 있어서도 확연히 나타난다.


1980년대 이후 음반 구매의 주요 고객인 10대가 부각되기 시작했고, 오빠부대와 팬클럽 등을 조직하는 10대는 1990년대 이후 음반 산업의 주요 고객층일 뿐만 아니라 팬덤현상을 이끌어내어 새로운 팬클럽 문화를 이끌어갈 정도로 그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했다.


또한 음악의 생산적 측면에 있어서도 1990년대 이후의 대중음악시장은 연관 산업으로 규모가 팽창하기 시작하였다. 음반 기획사들은 음악과 관련한 사업과 함께 종합적인 엔터테인먼트 개념으로 변화하였고, 가수는 10대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기획되어 문화상품으로서의 가치로 인식되었다. 중국과 일본 등을 비롯한 아시아에서의 한류 열풍과 함께 해외 시장에서 한국 가수와 한국 음악에 대한 수요 또한 점차 증가하였다.


음악연출가인 프로듀서의 명칭이 대중적으로 확산된 것도 1990년대 이후부터이다. 이들 역시 과거에 가수나 작곡가 등의 음악 활동을 했거나 현재 병행하고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져있다. 대부분 작곡, 편곡을 겸하고 있는 이들은 음반제작에서 실질적 수장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1990년대 이후 대중음악생산의 핵심 집단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김형석, 김창환, 이상민, 최준영, 이경섭 등이 음악 프로듀서로 활동하였는데, 본격적인 프로듀서 시스템의 시작은 이수만의 SM을 들 수 있다. 그 뒤를 이어 이수만처럼 가수로 출발한 박진영의 JYP가 있으며, 현재 이 두 회사는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의 라이벌이자
쌍두마차로 활약하고 있다.


Ⅳ. SM 엔터테인먼트와 JYP 엔터테인먼트 : 이수만 vs 박진영
이수만과 박진영 두 사람은 모두 가수로 출발하여, 프로듀서와 제작자로 변신해 현재 한국의 대중음악계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수만은 ‘엔터테이너‘라는 명칭을 탄생시킬만큼 기획적인 의도를 가지고 매니지먼트에 주력하여 H.O.TㆍS.E.Sㆍ신화ㆍ동방신기ㆍ보아ㆍ슈퍼주니어ㆍ소녀시대 등의 가수를 탄생시켰다. 박진영은 가수 비를 아시아 뿐만 아니라 미국 시장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 글로벌로 확대시켰으며,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진출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뉴욕에 회사를 설립하였다.


‘재벌닷컴’이 2006년 12월 종가를 기준으로 코스닥 부호들의 상장사 주식재력을 조사한 결과, SM의 최대주주 이수만은 전체 주식의 약 31%를 보유하였고, 298억원의 보유지분평가액으로 43위를 차지했다. SM은 2004년 199억, 2005년 221억원, 2006년 300억
원, 2007년 상반기에만 153억여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JYP도 2004년 73억, 2005년 132억, 2006년 163억으로 눈에 띄는 성장을 거듭했다. 한국음반산업협회가 집계한 2006년 음반판매량에서 SM은 약 73만7천장을 판매해 15%의 점유율로 1위를 기록했고, JYP가 13만6천장을 판매해 약 3%의 점유율을 나타냈다. 박진영은 미국 하버드 대학원생들과의 좌담에서 “비는 월드투어 개런티로만 100억원을 받았으며, CF, 음반판매, 영화출연 수입까지 2천만달러(약 186억원)를 벌어들였다”고 밝혔다.


두 기획사는 음반기획뿐만 아니라 방송, 영화, 게임, 뮤직비디오 등으로 사업범위를 넓히
고 있다. 이에 대해 음악 평론가 임진모씨는 “이제 음반기획사들은 음악과 관련한 사업에
총체적으로 접근하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개념으로 가고 있으며 이수만씨가 스타메이킹을
산업화한 것이 시작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SM을 세운 이수만은 1952년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농대를 거쳐,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컴퓨터 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71년 듀엣 ‘4월과 5월’로 데뷔하여 1977년 <흩어진약속>으로 MBC 가요대상 10대 가수상을 수상하였다. 가수와 함께 MC로도 활약했으며,
2004년 SBS 가요대전 올해의 음반 프로듀서상, 2005년 제 12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2007년 글로벌 CEO상 등을 수상하였다.


이수만은 1992년 현진영을 지원하면서 본격적인 매니지먼트 사업에 뛰어들었고, 이를 바탕으로 Major, J&J, 유영진 등의 기획을 시도했지만 성과를 이루지는 못했다. 이수만은 유영진과 콤비를 이루어 서태지와 아이들을 벤치마킹 하면서 H.O.T라는 댄스그룹을 기획
하였다. 서태지의 은퇴 이후 청소년을 리드할 문화적 지도자가 없는 공백기에 H.O.T는 서태지와는 다른, 친근하고 부담 없는 모습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정신을 표현하였고 청소년층을 장악하였다. 신세대의 발랄한 모습을 중점적으로 부각하며 십대에게 어필하면서도 서태지의 뒤를 잇는 듯 적당히 메시지를 함께 보여줌으로써 H.O.T가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댄스 그룹이라는 이미지를 함께 심어주었는데, 이후 만들어지는 댄스 그룹에게 모범사례가 된다.


이수만은 음악에 맞춰 가수를 발탁하는 형식을 사용하여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가수’ 시대를 열었다. 이수만은 캘리포니아 유학시절 MTV와 미국의 음반 산업에 매료되었다. 수많은 신인들이 꿈을 키우는 언더그라운드, 스타 발굴을 위해 바닥까지 뒤지는 기획자(프로덕션), 과학적 경영기법을 갖춘 대형 음반사 등으로 분업화 전문화된 시스템을 실감했다.


SM은 1995년 2월 법인 설립 자본 5,000만원으로 시작하여 2000년 4월 국내 Entertainment 기업으로는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될 정도로 성장한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이다. SM은 이수만의 이름을 따온 회사이지만 이수만이 경영에 직접 나서지는 않는다. 초기에는 김경욱이 대표이사를 맡았으나 현재는 김영민이 맡고 있고, 이수만은 제작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법인 이후 1996년 1월 H.O.T가 첫 음반 <We Hate All Kinds of Violence>를 통해 데뷔하면서 아이돌 스타의 전성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1998년 11월에는 S.E.S의 <I’m Your Girl>을 발표하면서 여성그룹의 시대를 열기도 했다. 또한 1998년에는 신화, 1999년에는 남성 R&B 듀오 플라이 투 더 스카이(Fly to the Sky)를,2000년에는 보아를 데뷔시켰다. 이수만은 한동준, 더 클래식의 김광현, 유영진 등을 맡아시행착오를 거친 후 그가 처음으로 만든 가수 현진영이 마약 복용으로 실패하면서 더욱 철저한 스타시스템을 발전시켰다.


SM은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폭발하기 시작한 10대들의 문화 소비 성향에 맞춰 잘생긴 만화 속 주인공 같은 댄스 가수들을 키워 회사가 원하는 형태의 가수를 만들어 음반 시장에 내놓고 있다. 자신의 음악성을 가지고 승부하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가수가 아니라 10대취향의 화려한 외모와 댄스 실력을 바탕으로 프로듀서의 기획하에 만들어내는 가수를 지향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JYP는 1997년 5월 박진영의 3집 <썸머 징글벨>의 음반을 기획하고 출시했다. 박진영은1972년 서울에서 출생하였고, 연세대학교 지질학과에 재학 중이던 1994년 가수로 데뷔하였다. 2003년에는 자선공연 등의 선행을 이유로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받았고, 2007년
12월 한국언론인연합회 주최로 한국의 위상을 세계에 드높인 인물에게 수여하는 ‘자랑스런한국인 대상’의 대중예술부분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박진영은 1997년 11월 태홍기획 주식회사로 법인을 설립하여 2001년 4월 주식회사제이와이피 엔터테인먼트로 회사명을 변경하였으며, 2007년에는 뉴욕에 지사를 열기도했다. 박진영 본인이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본인의 앨범 작업과 함께 진주ㆍ량현량하ㆍ2005년 해체된 GODㆍ박지윤ㆍ별ㆍ노을ㆍ비 등의 음반을 출시하고 기획하였다.2007년에는 원더걸스의 <텔미>라는 노래가 전국을 사로잡았고, 텔미 댄스의 복고 열풍으로 삼성경제연구소가 뽑은 ‘2007년 10대 히트상품’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수만은 10대 청소년층을 겨냥한 철저한 마케팅 전략, 캐스팅․트레이닝․프로듀싱에의한 음반 제작 시스템, 온라인 마케팅 시스템 등으로 대형 종합음반사이자 연예기획사로서오늘날 ‘SM’의 입지를 확보했다. 그는 사실상 음반 프로듀서라기보다는 ‘스타’ 제작자로서의역할에 더 충실한 셈이다. 이에 반해 박진영은 음반 프로듀서의 실력을 더욱 인정받고 있다.실제 그는 JYP의 모든 가수들의 곡을 쓰고 음반을 직접 프로듀싱 했으며 다른 소속사가수들의 음반 작업에도 참여하기도 했다. 박진영만의 특유의 R&B 창법과 흑인음악의색깔을 입힌 대중적인 곡으로 비ㆍGODㆍ박지윤ㆍ원더걸스 등을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이수만이 좀 더 대중적인 가수를 배출하는 사단의 사단장이라면 박진영이 키워낸가수들은 각자 자신만의 색깔이 강한 뮤지션들이다. 월드스타로 거듭난 가수 비는 특유의스타성으로 국내외 가요계를 비롯한 연기영역에까지 발을 들여놓은 출중한 엔터테이너이고, 진주, 임정희 등은 자신만의 음색이 강한 가수들이다.


두 기획사는 모두 가수 출신이 만든 회사이며, 보아와 비 등의 해외 스타를 키워냈고,비교적 어린 나이의 가수들을 발탁하여 훈련시키는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2007년에는‘소녀시대’와 ‘원더걸스’라는 여성 그룹의 리메이크 곡과 복고풍의 노래로 가요계의 라이벌이되기도 하였다. 또한 국내 시장 뿐만 아니라 해외 진출 전략을 구사하고 있으며, 연습생을거쳐 훈련받아 만들어진 가수들이 대부분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가수뿐만 아니라연기자들의 매니지먼트 또한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SM의 경우는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에대한 전략에 주력한 반면 JYP는 비를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스타로 발돋움 하고자 미국시장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해외 진출 전략에 대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SM은 한국의 가수를아시아의 스타로, 또는 현지에서 발굴한 가수를 우리나라에 거꾸로 도입하거나, 우리나라가수와 현지 가수를 조인트한 프로젝트 그룹을 형성하는 등 아시아를 주 무대로 활동했다.JYP는 미국시장 진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두 기획사는 국내 대중음악의 글로벌화를 지향하며, 각기 중국과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에 대한 개척을 시도하였다.


이수만은 한류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중국’ 시장을 집중 공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2007년 6월 SM을 방문한 하버드 경영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한 한류 특강에서 “큰 스타는큰 마켓에서 나온다”면서 “아시아의 거대시장인 ‘중국’에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이수만이 한류의 미래를 ‘중국’에서 찾았다면 박진영은 ‘미국’ 시장에서 가능성을찾고 있다. 박진영은 2007년 5월 연세대에서 열린 “한국 문화의 세계화”라는 특강에서‘미래의 한국 엔터테인먼트가 활동하는 영역은 아시아를 넘어 미국과 세계가 될 것이 분명하다’며 미국시장 진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Ⅴ. SM 엔터테인먼트와 JYP 엔터테인먼트의 해외 시장 전략의 대표적 사례 : BoA vs 비


SM과 JYP는 한국에서의 활동 뿐만 아니라 한국을 넘어서는 세계화 전략을 구사하고있다. 그 중 SM은 아시아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가수의 해외 진출 뿐만아니라 중화권 스타인 바네스와 강타의 결합을 추진하기도 하고, 슈퍼주니어의 멤버 한경처
럼 아예 중국인을 선발하여 한국에서 활동시키는 등 다각적인 측면으로 아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다. JYP는 비를 성공적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시켰고 임정희, 원더걸스 등의 소속사가수들 또한 미국에서의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두 회사의 대표가수인 보아와 비(비는 2007년 박진영과의 계약을 종료하고, 자신이 직접 기획사를 설립하여 활동하고 있다)의 경우를예로 들어 두 회사의 해외 시장 전략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SM은 H.O.T와 보아의 아시아 시장 성공 이후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천상지희, 강타& 바네스, 장리인 등을 통해 중국과 일본에서 활약 하고 있다. 슈퍼주니어와 동방신기는아시아 시장을 무대로 기획되어졌으며, 특히 동방신기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국시장
을 목표로 구성되었다.


이수만은 보아를 키우기 위해 H.O.T가 번 30억을 투자했고, 당시 SM은 H.O.T와S.E.S와의 재계약을 체결하지 못해 위기 상태에 있었다. 하지만 보아의 성공으로 인해존폐위기에 있던 SM은 다시 비상했고, 보아는 2004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선정한
문화콘텐츠 수출 대상 음악 부분에 선정되기도 했다. BoA(Best of Angle)는 초등학교5학년 때 이수만에게 발탁되어 3년 가까이 일본 진출을 목표로 일본인이 좋아하는 스타일의가수로 기획되어졌고, 그에 맞게 트레이닝을 받았다. 일본과 아시아 시장 그리고 세계 시장을 겨냥한 프로젝트의 첫 단계는 영어와 일본어 트레이닝이었고, 댄스교습과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다. 일본에서 보아는 한국 가수라기보다는 일본 가수라 여겨지고, 아시아에서도역시 일본인 가수로 분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2004년 아시아 MTV시상식에서 일본 가수를 대표해서 출연했으며, 앨범은 일본 배급사인 AVEX18)에서 책임지고 있고, 음반 매장에서도 J-Pop으로 분류된다.


보아는 철저한 기획력을 바탕으로 탄생한 전략적 수출상품이며, SM의 기획력이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문화상품이기도 하다. 2003년 일본 여자 솔로가수 앨범 판매량 1위, 전체판매량 3위를 기록했으나 2005년에는 9위로 하락하였다. 일본에서의 인기가 여전하다고 하지만 소녀풍을 좋아하고 트렌드 변화에 민감한 일본 시장에서 보아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 SM 역시 이와 같은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에 일본에서의 성공을 시작으로 중국 시장과 미국 시장으로 진출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보아 이후 SM은 동방신기, TRAX, 천상지희 등 아시아 시장 전체를 목표로 아시아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 네트워킹을 위해 2000년 11월 AVEX와 음반라이센싱및 아시아 에이전시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후 합작으로 2001년 SM Japan을 세웠고,2003년 중국 북경에 SM China를 설립하여 아시아 전역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박진영의 공로는 가수 비의 성공적인 미국 진출에 있을 것이다. 비는 2002년 박진영의백댄서로 데뷔한 이래 2007년 월드 투어 이후 JYP와 결별하고, 자신이 직접 제이튠 엔터테인먼트라는 소속사를 설립하였다. 비는 뉴욕 메디슨 스퀘어가든에서 아시아인으로서는 최초로 공연 했으며, 2006년 2월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선정되어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또한 <매트릭스>를 만든 워쇼스키 형제 감독의 초대형블록버스터 <스피드 레이서>에 조연으로 캐스팅되어 2008년 5월 8일 개봉했으며, 조엘실버와 워쇼스키 형제 감독이 제작자로 나서는 <닌자 어쌔신>에는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드림웍스가 제작하는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의 OST를 부르게 되어, 한국 가수로는 최초로 할리우드 OST에 참여하는 가수가 되었다.


2004년 홀로 미국으로 건너간 박진영은 9개월간 데모 테이프를 들고 다니며 문전박대의수모를 참아낸 끝에 실력을 인정받아, 아시아 프로듀서로서 미국 메이저 시장에 성공적으로진입할 수 있었다. 같은 해 8월 목사 출신 힙합 뮤지션 메이스(Mase)의 컴백 앨범에 참여해<The Love You Need>를 수록시킴으로써 미국 시장에 진출한 첫 한국인 뮤지션으로기록됐다. 지난해 4월에는 윌 스미스의 최신 음반 ‘Lost and Found’에 <I wish I madethat>의 작곡가 및 프로듀서로 참여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구사하여
비를 ‘아시아의 스타’를 넘어 ‘월드 스타’로 변신시켰다.


이수만은 보아의 일본 진출과 H.O.Tㆍ동방신기ㆍ슈퍼주니어의 중국 시장 공략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박진영은 비를 비롯하여 민ㆍ지소울ㆍ임정희 등을 미국으로 진출시켰다.이수만은 아시아 특히 동북아시아로 눈을 돌리게 된 이유에 대해 “미국은 시장이 크지만,
정서가 너무 다르고 인종적인 한계가 있어, 아시아로 눈을 돌리게 됐다. 한ㆍ중ㆍ일을 합치면 15억이 넘는 시장 규모이며, 미래는 중국시장으로 생각한다. 동북아 시장만 합쳐도15억 인구가 있으며, 아시아에서 1등이 세계에서 1등이 되는 날이 올 것이다”라며 중국
시장에 대한 그의 전략을 말하고 있다. SM은 본격적인 아시아시장 공략을 위해 일본의에이벡스(AVEX)와 중국 청티엔(CHENGTIAN)과 합작해 ‘SMAC’를 설립했다. 이수만은 초대회장을 맡았고, 최근 중국의 포털사이트 ‘소후닷컴’에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소후닷컴은 이수만을 ‘아시아 최고의 프로듀서’ ‘한국음악의 대부’라고 소개했으며,이수만의 성공 노하우와 중국 진출 전략 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이에 반해 박진영은“음악 대신 가수를 파는 한류에는 전혀 관심 없으며 한류는 한시적이다. 중국은 곧 모국어로노래하는 아이돌 스타를 갖게 될 것이다. 음악을 가지고 나가서 판다면 몰라도 가수를 파는한류는 ‘노’라고 말하겠다. 내가 진출하고 싶은 곳은 미국 시장이다.”라고 밝혀, 이수만의 중국시장 진출 전략과는 다른 미국 시장 진출 전략에 대한 소견을 밝히고 있다.


Ⅵ. 한국 대중음악계를 위한 제언
SM과 JYP는 음반판매량 뿐만 아니라 현재 한국 대중음악의 선두주자이며, 한국의 대중음악을 이끌어가고 있다. 또한 국내시장을 뛰어넘어 우리의 음악, 우리의 가수를 해외시장에 진출시켜 한국의 우수한 대중음악을 세계에 알린 공로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수만은 1999년 8월 회사 공금 11억을 횡령한 혐의로 해외로 도피해 인터폴에 수배되었으며,2003년 구속되기도 했다. 이수만에 대한 평가는 ‘한류의 개척자’ ‘음악 산업 황폐화의 주범’등으로 엇갈리고 있으며, 박진영이 만든 곡은 선정적인 가사와 춤 등으로 청소년들에게유해한 영향을 끼친다는 논란과 함께 끊임없이 표절의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연세대에서열린 강연에서는 한국적인 것을 강조하기보다는 보편적인 흐름을 따라야하며, 세계적으로성공하기 위해서는 한국을 강조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서 많은 논란을 일으키기도했다. SM과 JYP는 한국 음악계에 공헌한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기획성 가수, 만들어진가수, 음악이 아닌 외모와 춤 등으로 승부하는 가수들의 시대를 열어 한국 대중음악계의주류를 변형시키는 등 결과적으로 대중음악계에 악영향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2007년 온 나라를 ‘텔미 열풍’으로 휩쓸었던 원더걸스의 1집 <텔미>의 음반 판매량은 4만 7927장에 불과했다. 한국음반산업협회가 2007년 가요 음반 판매량을 집계한 결과 20만장 이상 팔린 음반은 1장도 없었고, 판매량 1위에 오른 SG워너비의 4집 <아리랑>이19만998장 나갔을 뿐이다. 10만장을 넘긴 음반도 2위 슈퍼주니어 2집 <돈 돈>(16만4058장), 3위 에픽하이 4집 <팬>(12만301장) 등 3장에 불과했다. 한국음반산업협회는 “1년동안 20만장을 판 앨범이 1장도 없는 것은 1999년 협회가 집계를 시작한 이래 처음”이라고
밝혔다.


* 연도별 음반판매량 1위 (단위: 장)25)

연도

가수

음반

수량

2000

조성모

<아시나요>

1968967

2001

변진섭 외

<연가>

1688129

2002

<진실>

647052

2003

김건모

<청첩장>

529416

2004

서태지

<로보트>

482066

2005

SG워너비

<죄와벌>

414855

2006

동방신기

<!..>

349317

2007

SG워너비

<아리랑>

19998

 

노래가 히트하고,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얻었으나 음반이 팔리지 않았다는 점과 해를거듭할수록 음반 판매량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현재 우리의 대중음악계가 당면한 가장커다란 문제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들의 불법 다운로드 등으로 인해 음반의 구매
가 줄었고, 창작자들은 새로운 음악을 만들기보다는 과거에 인기 있었던 음악들에 의존해리메이크하는 형식으로 음악을 만들고 있다. 또한 제작자들은 다양한 장르와 뮤지션 위주의 음악보다는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방향으로 유행을 쫓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현재 한국 대중음악계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데, 이에 대해 몇몇의 전문가들은 기획사가 만들어낸 스타 시스템의 문제, 10대 위주로 편성된 공중파 방송의 문제, 평론의 부재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신현준은 스타 시스템 속에서 기획사가 음반 제작보다는 스타의 매니지먼트, 토탈연예기획사 혹은 토탈 매니지먼트사로 변질된 측면과 이들 기획사들이 만들어낸 스타 시스템은 한국 문화산업이 스타에 의존하여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동연은 TV를 중심으로 성장한 음반 산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공중파 방송이주로 10대 청소년 시청자가 좋아하는 댄스 음악 중심으로 방송을 편성하게 되고, 그 여파가수많은 쇼 오락 프로그램으로 이동되면서 대중음악을 하나의 볼거리로 전락시켜버렸다.
이에 TV에 출연을 집착하는 뮤지션들과 출연을 기피하는 뮤지션들이 생기게 되고, ‘오디오가수’와 ‘비디오 가수’로 구분 짓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선성원은 우리 대중음악의 문제로 방송전문 종사자의 부재ㆍ평론의 부재ㆍ레코드 제작자의 부재 이렇게 세 가지를 꼽았다. 특히 평론의 부재를 강조하고 있는데, 우리 사회어떤 분야든 평론가가 있기 마련이고, 물론 가요계에도 평론가는 있지만, 가요평론은 극히
드물며, 활자 매체가 대중음악 평론가들에게 지면 할애가 인색하다는 말과 함께, 자연히대중음악계는 지적하거나 비판하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혼전을 거듭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침체기를 맞이하고 있는 한국 대중음악계에 공연문화의 활성화와 개성이 뚜렷한가수들의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대중음악 전문 공연장의 설립을 제안한다.외국의 경우 음반 수익과 공연 수익이 거의 50대 50을 차지하는 반면 우리나라 음악산업은 대부분 음반 수익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가수의 라이브 콘서트를 통해 음반매출의 증가를 기대할 수 있으며, 음반 시장의 확대와 음반 홍보수단의 다양화를 이룰 수있을 것이다.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인 들국화, 동물원, 다섯 손가락, 봄여름가을겨울, 시인과 촌장, 김현식, 한영애, 장필순 등은 방송보다는 공연을 통해 자신들의 독특한 음악세계를많은 대중들에게 각인시켰다. 들국화 1집의 경우 방송을 전혀 타지 않고도 당시에 30만장이나 되는 음반 판매량을 기록했다. 또한 시나위, 백두산, 부활 등은 헤비메탈로 다양성이부족한 한국 대중음악계에 새로운 장르를 선보였으며, 이들은 모두 음악을 위주로 음악공연문화의 활성화에 기여했다. 댄스음악과 비디오 가수들이 주류를 이루던 1990년대에도 넥스트, 공일오비, 강산에, 푸른하늘, 김종서 등의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이 활약했고, 이들의음악은 댄스음악 못지않은 인기와 함께 대중가요가 하기 힘든 새로운 음악적 실험을 전개하였다.


2008년 5월 24일 잠실주경기장에서 데뷔 ‘40주년 기념’ 공연을 펼쳤던 조용필, 얼마전 은퇴했지만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록 동요를 만들겠다는 포부와 함께 ‘한국 록의 대부’로불리는 신중현 등은 한국 대중음악사에 하나의 획을 긋는 대중음악인들로 이 시대 많은
음악인들에게 하나의 모범 사례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조용필은 1975년 <돌아와요부산항에>로 데뷔한 이래 트로트, 발라드, 록, 민요 등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을 소화한인물로 지금까지도 톱스타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독보적인 존재이다. 신중현은 1962년
한국 최초의 록 그룹 애드 훠를 조직한 이래, 록이라는 장르 하나로 음악활동을 이어갔다.그의 노래 <미인> <님은 먼 곳에> <비속의 여인> <님아> 등은 봄여름가을겨울, 박진영,김건모, 조관우, 신효범 등 여러 가수들이 리메이크했고, 1997년 강산에, 시나위, 윤도현
등의 후배 가수들에 의해 국내 최초의 헌정 앨범으로 기록되는 <A Tribute to 신중현>이발매되었을 만큼 그가 한국 대중음악사에 끼친 영향력은 대단하다. 조용필처럼 시대의 변화와 관계없이 남녀노소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는 음악인, 신중현처럼 한국적인 록음악을 주장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음악을 지속하는 음악인, 이러한 대중음악인의 존재와 그들의 행로는 만들어진 가수,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주가 되고 있는 현재의 대중음악계에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대중음악을 위한 전문 공연장이 없다. 물론 클래식 음악과 고급예술을 위한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이 있지만, 대중음악인들에게는 그리 호의적이지않다. 세종문화회관에서는 1978년 대중가수로서는 처음으로 패티김의 공연이 있었고 조용필, 나훈아, 인순이, 이미자, 신중현, 산울림 등의 일부 가수들의 공연도 있었지만,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의 경우 조용필이 1999년부터 매년 연말 콘서트를 열어 매진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2006년 중단되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최근 세종문화회관에서 ‘데뷔 50주년기념 공연’을 했던 패티김도 대구오페라하우스와 대전문화예술의 전당에서 대관을 거부당했고, 예술의 전당에서도 인순이, 이소라, 싸이의 대관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재 대중음악공연은 잠실주경기장, 펜싱 경기장, 역도 경기장 등의 공공체육시설과 일부 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극장, 대중음악의 공연이 가능한 지방의 몇몇 문예회관, 연극 공연을 위한 소극장이나 호텔 등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문 공연장이 없기 때문에 공연계획을 세우기도 어렵고, 비싼 대관료와 함께 무대, 음향, 조명 등에 낭비되는 경제적 비용또한 만만치 않다. 대중음악 공연문화의 활성화를 위해 대중음악 전문 대극장과 중극장및 소극장 등을 설립하여, 다양한 대중음악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기반이 조속히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Ⅶ. 나가며
이상으로 대중음악이 가진 사회적 의미와 함께 현재 한국 대중음악계에 막강한 영향력을차지하는 SM과 JYP를 중심으로 199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계의 변화에 대해 살펴보았다. 현재 한국 대중음악계는 소비자들의 불법 다운로드 등으로 인해 음반의 구매가 현저히줄어들었고, 새로운 음악의 창작 보다는 과거에 인기 있었던 음악들에 의존한 리메이크형식의 앨범이 증가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장르와 뮤지션 위주의 음악은 외면당하고,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방향으로 유행을 쫓아가는 음악이 주로 양산되는 등 총체적인 문제점을안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대중의 역할은 점점 커지고 있으며, 대중은 소비문화의 주체로 급부상하며,그 영향력 또한 커지고 있다. 대중은 스타를 원하고, 대중음악은 TV를 비롯한 대중매체의영향으로 성장했으며, 이제 방송매체, 음반 산업, 그리고 매니지먼트 산업 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대중은 가수들의 노래 뿐만 아니라 외모와 화려한 춤등을 중시하게 되었고, 제작자들은 대중들에게 익숙하고 어필할 수 있는 음악과 가수를배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수만의 SM과 박진영의 JYP는 프로듀서 시스템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가수를 탄생시켰으며, 국내 시장 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미국 등 해외에 한국의 음악과 가수들을 진출시켜한국 대중음악을 세계에 알리는데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하지만 지나친 상업적 의도, 가수가 아닌 엔터테이너의 확산으로 인한 음악 질의 저하 등을 가져오기도 했다. 또한 이수만은립싱크도 하나의 장르라 여기며, 박진영의 경우 노래를 조금 못하고 춤을 잘 춘다면 그것이왜 문제인가 라고 반문하면서 대중이 원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폈다. 물론 이미지가 중요시되는 현대사회에서 외모와 댄스 실력으로 자신을 돋보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가수의노래를 부각시켜주는 하나의 수단일 뿐 전부가 아니며, 가수는 자신의 음악성과 개성으로승부해야 한다. 실력과 가창력을 갖춘 가수보다는 외모와 끼를 앞세운 기획성 가수들이판치는 작금의 한국 대중음악의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다. 대중음악이 가진 사회적 의미와함께 대중들을 뒤따라가기 보다는 대중들의 안목을 높이고 선도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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