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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서태지와 아이들 사진전 - 아름다운 만남, 소중한 친구들 (문서)
by LSH46
조회 2111 (2011.11.11)  
날짜 1998-07-27 
시기(시나위~9집) 5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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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sa_069.txt 
아름다운 만남, 소중한 친구들

  여름입니다. 장대같이 쏟아지는 비, 축축한 습기, 따가운 햇빛, 여름방학, 휴가의 설렘, 이 모든 것을 제쳐놓고 여름,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어떤 이름이 있습니다. 그 여름과 같이 뜨겁고, 눈부시고, 아름답던 사람들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사람들 얘기, 들려드릴까요?
  그들은 한여름 소나기처럼 예고 없이, 그렇게 갑작스레 다가왔습니다. 알아들을 수 없을만치 빠른 말들을 내뱉으며, TV 쇼프로에선 볼 수 없었던 이상한 옷을 입고, 생소한 랩음악에 생소한 춤을 추면서, 성큼성큼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우리 눈도, 귀도, 마음도, 모두 사로잡아 버렸습니다. 먼 훗날 서로 힘들 때 생각하며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친구들과의 첫 만남은 그랬습니다.
  세상에서는 그들을 두고 많은 말들이 오갔습니다. 한국말로는 불가능하가는 랩을 성공적으로 시도했으며, 댄스뮤직과 메탈이라는 상극의 절묘한 조화라는 찬가와 열광. 춤과 외모로 승부할 뿐이라는 비난과 무시. 반짝 인기로 끝날 것이라는 예측도 했습니다. 그 빛나는 만남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여는 전주, 아주 작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들의 음악에 실려 있는 젊은 힘은 우리를 진정으로 살아 있게 해주었습니다. 무대가 부서질 듯 뛰어다니던 파격적인 몸짓은 자유와 도전을 온몸으로 가르쳐주었습니다. 거리를 휩쓸고 지나가던 랩음악의 열풍, 너도나도 입고다니던, 상표가 붙은 그들식의 옷차림, 원색적인 티셔츠와 반바지의 물결, 공개방송에서의 환호성, 겉으로 보이는 이런 화려함의 이면에서 우리가 보았던 것은,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과 음악에 대한 열정이었습니다.
  그들은 음악을 위해, 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을 보며, 우리도 저러겠노라고, 꿈을 위해 저렇게 열심히 살겠노라고, 가슴 벅찬 다짐조차 했습니다. 그때부터였나 봅니다. 그들이 우리 삶의 건전한 지표가 되었던 것은 말입니다.
  그 뒤로 여섯 번의 여름이 흘러갔습니다. 그들은 여름의 기운과 함께 싱싱하고 밝고 한층 성장한 모습으로 우리 곁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두 번째 여름. 보이지 않는 시간들을 넘어,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 상업적 음악과의 타협이라는 유혹을 넘어, 그들은 그들만의 모습으로, 변할 것은 변하고 변하지 않을 것은 간직한 채 그렇게 다시 다가왔습니다. 그들의 새로운 음악을 처음 접했을때의 전율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어벙벙함이 지나간 후, 그 음악의 리듬과 선율과 느낌을 모조리 흡수하겠다며 하루종일 음악을 귀에 꽂고 살던 날들.
  우리는 기꺼이 귀를 열었습니다. 장르의 벽을 허물며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들의 음악세계에 기꺼이 빠져들었습니다. 복장불량, 혐오감 조성이라며 TV 출연을 금지당하고 가사가 퇴폐적이라며 한 곡이 방송금지를 당해,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낡은 사고방식 때문에 발을 동동 굴러야 했지만, 그래도 알고 있었습니다. 1집의 음악들을 뛰어넘겠다며 음악에만 매달렸던 21살의 젊은 친구, 음악의 느낌을 풍부하게 실어줄 춤을 만드느라 마룻바닥에 숱한 땀방울을 흘렸던 그의 친구들.... 그들이 침묵했던 시간이 신비감을 조성하기 위해 흘려보낸 시간이 아니라, 자신들과의 힘겨운 싸움의 시간들이었음을. 그리하여 그들의 장난스런 웃음도, 낡은 사고방식에의 저항도, 넘치는 에너지도, 끝없이 새로워지는 모습도 모두모두 사랑했습니다.
  세 번째의 여름. 화려한 콘서트와 속이 꽉 찬 음악으로 다시 그들이 돌아왔습니다. 새롭게. 늘 새롭게. 그들은 변한 모습으로 다시 한번 우리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들의 노래는 매일 아침 7시 30분까지 조그만 교실로 들어가 친구의 머리를 밟고 올라서야 내가 살 수 있다고 강요받던 9백만의 아이들에게 복음이 되었습니다. 이 나라의 갈라진 허리를 잇는 일에 무관심함을 일깨우며 '젊은 우리 힘들이 모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용기를 불어넣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나태함으로 때론 용기 없음으로 주저앉고 싶던 우리 두 손을 잡아끌어 주었습니다.
  세상에선 그들의 사회비판적인 음악을 듣고 그들을 투사라고도, 상업성의 화신이라도, 악마라고도 했습니다. 대안이 없는 비판이라고도 했습니다. 청소년의 정서를 해친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다는 아니라는 것을. 세상에 외치는 그들의 노래, 반문화적인 자유의 숨결은, 자신의 음악을 지키고픈 그들의 용기와 고집이었음을. 착하고 맑고 자유롭고 싶었던 젊은 영혼의 외침이었음을.
  광대가 아니라 음악인이고 싶었기에 그들은 온갖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TV에선 더 이상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언제나 그래 왔듯 그들에 대한 비아냥과 옹호로, 찬반 논쟁으로 세상이 시끄러웠습니다. 하지만 상관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음악이 있었고, 꿈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개 숙이지 않았습니다.
  네 번째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갈 무렵, 다시 세상이 흔들렸습니다. 컴백홈~ 그들이 돌아왔으니까요. 숨가쁘게 몰아대던 빠르고 단순한 음악뿐인 가요계에 정면으로 도전하듯, 온통 얼굴을 가린 채 느린 비트와 뒤틀린 보컬로 그들은 컴백홈을 노래했습니다. 아직 우린 젊기에, 괜찮은 미래가 있기에 차가운 눈물을 닦고 함께 일어서자고. 청소년들이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음악을 듣고 눈물 흘리며 돌아왔다고. 정말 이 말을 믿어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그들의 영향력에 혀를 내두르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십대들의 대통령이라는 말도 들렸습니다. 행복했냐구요. 예,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였습니다. 그때, 참 많은 일들이 있었거든요. 모두 같이 웃고 같이 울었던 날들이었습니다. 사회 부조리를 꼬집었다는 이유로 노래말이 잘려나가고, 판매금지 위협이 들어오고, 얼토당토않은 표절시비가 일었습니다. 코미디 프로에 출연해 웃음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 방송사와 마찰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깎아내리고 못살게 굴던 사람들을 향해, 그들을 우리가 지킨다며 난생 처음으로 서명을 하고 지장을 찍는다던 어린 친구들의 마음이 아름답던 날들이었습니다. 음악인의 양심, 표현의 자유를 지키겠다던 그들의 모습에 자랑스러우면서도 안쓰러워 슬쩍슬쩍 눈물 훔치기도 하던, 그런 날들이었습니다. 공윤이 폐지되고 사전심의가 사라진다는 소식에, 작은 힘이나마 거들었다며 뿌듯해하던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갑자기 떠나갔습니다. 서러워 세상이 하얀 눈물 흘리던 날, 우리의 모든 그리움과 사랑과 아쉬움을 남기고 자신들의 세상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창조의 고통으로 너무나 힘겨웠다 고백하는 그들의 야윈 모습에, 울고 웃던 우리는 그들의 손을 놓아주었습니다. 이젠 자유로워지라며 그들을 떠나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매도하고 지난 상처들을 들쑤시던 언론의 화살 속에서도, 우리는 알고 있었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더 큰 자유를 찾아 떠난 것이라는 걸. 또 다른 내일을 꿈꾸며 새로운 비상의 준비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여름은 슬펐습니다. 하지만 지금 맞이하는 이 일곱 번째의 여름은 슬프지 않습니다. 지금 그들은 새로운 음악을 통해, 라디오 전파를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를 통해, 그들이 키우는 후배들을 통해 다시 우리에게 돌아와 있으니까요. 비록 '그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순 없지만, 이렇게 미소지을 수 있는 이유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꾸고 새롭게 도전하는 그들의 또 다른 꿈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이제 말씀드릴까요?
  바로 우리의 소중한 친구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서·태·지·와·아·이·들·이랍니다.


우리 … 서태지와 아이들 기념사업회

  서태지와 아이들의 정신과 바람들이 빛나게 자라날 수 있도록 모든 정성과 뜻을 모은 서태지와 아이들 기념사업회가 벌써 햇수로 3년을 맞앗습니다. 서기회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창조적 음악활동을 기리고 자유와 도전 정신을 발전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구성되었습니다. 또한 우리 대중문화계의 고질적인 병폐들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제기와 여론형성을 통해 나이와 성별을 뛰어넘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대중문화풍토를 일구고자 하였습니다. 더불어 입시와 취업이라는 중압감에 눌려 있는 청년들에게 바람직한 문화풍토를 제시하고자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서태지와 아이들 기념관' 건립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기념관은 그들의 음악활동을 기념하는 동시에 대중문화 발전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발전적 토론의 장이 될 것입니다.
  이런 취지 아래 그 동안 서기회는 많은 일들을 해냈습니다.
  먼저, 스타라는 환상에 빠진 오빠부대들의 모임이라는 편견을 깨고 서울시에 문화단체로 등록을 했습니다. 전화선을 타고 PC통신이라는 사이버 공간에서도 마음을 모았으며, 국내 연예인으로는 처음으로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개설해서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보이는 길 밖에도 세상은 있다고 외친 그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책도 펴냈습니다. 그들이 보여준 사회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잊지 않고, '어린이에게 새 생명을' 행사에 성금을 모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대학입시 지상주의에 억눌려 교실 속에서 시들어가는 청소년들의 가장 믿을만한 친구였던 그들의 뜻을 이어, 극단 한강의 공연 <교실 이데아>를 후원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작년 8월 '청소년 보호법'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는 성명서와 함께 서명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연세대에서 열린 '여성과 록' 행사에 참여하여 대중문화의 외곽지역에서 소외되어 있는 록밴드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또 대중문화에 대한 방송언론매체의 무분별한 보도태도를 항의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대중문화에 대한 감시가 구실을 수행했습니다. 이런 관심을 좀더 폭넓게 확장해 '댄스음악 바로 보기'라는 주제로 4회에 걸친 대중문화특강을 열어서 문화에 대한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수용자가 되고자 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두 차례에 걸쳐 열었던 영상콘서트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준 벅찬 공연이었습니다.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8천여 명이 모여 치러낸 1회 영상콘서트 '회상 그리고 우리들만의 추억'에서는 우리 모두가 주인공이었습니다. 또다시 7천여 명이 모였던 2회 공연은, 그들이 눈물 없이는 해낼 수 없었기에 하지않았던 4집 콘서트를 컨셉으로 한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작년과 올해, 두 차례에 걸쳐서 물 맑고 산 졸은 곳에서 캠프가 열렸습니다. 사는 곳도 다르고, 나이도 제각각인 친구들이 오로지 서태지와 아이들 팬이라는 이유로 한자리에 모여 마음을 나누던 시간이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수천 명이 모여 음악만으로 돌아온 서태지 씨의 음악을 언더밴드와 함께 몸으로 느끼며 듣는 시간도 마련했습니다.
  이렇게 우리 서기회는 서태지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함께 나누는 가운데 그들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우리 젊은날의 가장 자랑스러운 이름, 서태지와 아이들. 우리 서기회 또한 그들에게 자랑스러운 이름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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